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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드라망 칼럼

  [삶과 인드라망] 모든 변화의 첫 단추, 선거법 개혁
  글쓴이 : 인드라망     날짜 : 17-05-10 15:05     조회 : 2214    

모든 변화의 첫 단추, 선거법 개혁

대통령 선거가 한참이다. 곧 새로운 대통령이 탄생할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대통령이 탄생한다고 한들 ‘헬조선’으로 요약되는 현실이 개선될까?

그렇게 낙관하기는 어렵다. 대통령이 아무리 개혁적인 사람이 된다고 해도, 대한민국의 기득권 구조는 견고하다. 당장 국회에서 법률 하나 통과시키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 닥칠 것이다. 작년 12월 대통령 탄핵소추 결의안이 통과된 이후에 국회 상황을 보면, 쉽게 예측할 수 있는 일이다. 재벌개혁, 검찰개혁 법률을 통과시킨다고 수없이 약속했지만, 그 법률들은 여전히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이런 상황은 대통령이 바뀌어도 계속될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국회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숱한 우리 삶의 문제들을 풀어야 하지만, 국회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풀기가 어렵다. 미세먼지를 줄이려고 해도, 위험한 원전을 폐쇄해나가려고 해도, 최저임금을 올리고 농민들에게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하려고 해도, 국회에서 법률과 예산이 통과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주 일시적이고 약간의 변화만 가능할 뿐이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국회라는 판 자체를 바꾸는 것이다. 판을 바꾸려면 판을 구성하는 규칙을 바꾸는 수밖에 없다.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제도를 바꿔야 국회판 자체를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뉴질랜드는 1993년에 국민투표까지 거쳐서 선거제도를 바꿨다. 지역구에서 1등을 한 후보만 당선이 되고, 2등, 3등, 4등을 한 후보를 찍은 표는 죽은 표(사표)가 되는 불공정한 선거제도를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바꾼 것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란 정당이 얻은 득표율대로 전체 국회 의석을 나누는 제도이다. 30% 얻은 정당은 30% 의석을 가져가고, 10% 얻은 정당도 10% 의석을 가져간다. 1등만 되는 것이 아니라, 2등, 3등, 4등 정당을 찍은 표도, 그 표만큼 의미를 가진다. 사표를 최소화하고 표의 가치를 동등하게 하는 선거제도이다.

이렇게 선거제도를 바꿨더니, 뉴질랜드에서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1980년대에 신자유주의 모범국가로 불리며 불평등이 심해지던 뉴질랜드 사회에서, 최저임금이 오르고 임대주택이 개선되며 민영화가 중단되고 가난한 가정에 ‘가족수당’이 지급되는 변화가 일어났다. 선거제도 개혁의 결과였다. 정당득표율대로 전체 국회 의석을 나누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했더니, 뉴질랜드 국회에 다양한 정당들이 진출했다. 4등, 5등을 한 정당도 자기가 얻은 표만큼 의석을 가져갔다. 선거를 하면 1등을 한 정당도 40% 내외의 표를 얻을 뿐이었다. 얻은 표만큼 의석을 가져가니, 1등을 한 정당도 국회에서 혼자 과반수를 차지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여러 정당이 정책을 놓고 협상해서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정치가 이뤄졌다.

유권자들도 이제는 정당의 정책을 보고 투표를 했다. 그러니 아무리 보수적인 정당이라고 해도, 시민들 삶의 문제에 무관심해서는 표를 얻을 수가 없었다. 보수정당도 표를 얻기 위해서는 복지를 중시할 수밖에 없었다. 약자들과 소수자들의 목소리도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뉴질랜드 사회는 큰 방향전환을 하게 되었다. 보다 평등하면서도 인간답게 사는 방향으로 전환을 한 것이다. 이런 뉴질랜드의 사례는 시사하는 것이 많다.

우리가 알고 있는 복지 국가들은 거의 예외 없이 정당득표율대로 국회 의석을 배분하는 선거제도를 갖고 있다. 지금은 우리가 부러워하는 나라들이 되었지만, 스웨덴이나 덴마크 같은 나라들이 본래부터 ‘삶의 질’이 높았던 것은 아니다. 그 나라의 정치가 지금의 모습을 만든 것이다.

먹고 살기가 힘들어서 한때는 인구의 4분의 1 이상이 이민 가던 스웨덴, 독일과의 전쟁에서 좋은 땅을 빼앗기고 힘들게 살아가던 나라 덴마크가 오늘날과 같은 모습이 된 것은 ‘좋은 정치’ 덕분이다. 그리고 그런 정치를 만든 것이 바로 유권자들의 표심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는 선거제도이다. 덴마크나 스웨덴 모두 정당이 얻은 득표율대로 전체 국회 의석을 나누는 선거제도를 갖고 있다. 독일, 핀란드, 노르웨이, 스위스,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같은 나라들도 마찬가지이다. 나라마다 구체적인 방식에는 차이가 있지만, 공통점은 정당이 얻은 득표율대로 전체 의석을 배분한다는 원칙을 지키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선거제도는 이렇지 않다. 300명의 국회의원 중에서 253명의 지역구에서 1등을 하면 당선되는 승자독식의 선거제도(소선거구제)로 뽑는다. 300명 중에 겨우 47명만 비례대표라고 해서 정당득표율대로 나누지만, 의미가 없는 수준이다. 그래서 한국의 역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를 보면 거대정당들이 실제 득표에 비해 과도한 의석을 차지하는 현상이 반복됐다. 2004년, 2008년, 2012년에는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의 득표를 얻은 정당들이 국회에서 단독으로 과반수를 차지하는 결과가 나왔다. 그 결과 4대강 사업이 강행되었고, 국정농단이 벌어졌다. 작년 4월 총선의 결과도 정당득표율과 의석비율이 일치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거대한 2개 정당이 얻은 득표율에 비해 많은 의석을 차지했다.

이런 선거를 반복하다 보니, 국회의원들이 점점 정치 특권계급으로 되고 있다. 작년 4월 총선에서 당선된 국회의원 평균연령은 55.5세에 달했다. 20대, 30대 당선자는 전체 300명 국회의원 중 3명에 불과했다. 국회의원 평균재산은 40억 원에 달했다. 여성 국회의원 비율은 17%에 불과하다.

이것은 현재의 선거제도가 낳은 필연적인 결과이다. 거대정당에 들어가서 당선 가능한 지역구에서 공천을 받아 1등을 해야 국회의원이 될 수 있는 선거제도이다. 그런데 청년이 거대정당에서 당선 가능한 지역구에 공천을 받을 수 있는가? 여성들, 장애인들이 그런 곳에 공천을 받기 쉬울까? 그래서 대한민국의 국회는 정치특권계급처럼 되었다. 과도한 특권을 누리면서 정작 필요한 일에는 집중하지 않는 국회가 된 것이다.

그래서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국회의원 선거제도를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바꾸는 것이 시작이다. 그와 함께 국회의 특권은 없애고, 국회의원 숫자는 오히려 늘려야 한다. 지금 5,744억 원의 예산을 쓰고 있는 국회에는 쓸데없는 낭비 요인들이 너무 많다. 국회의원이 받는 급여는 수당을 포함하면 1억 4천만 원이 넘고, 국회의원 1인당 7명+2명(인턴)의 보좌진을 두고 있다. 이런 과도한 급여와 보좌진 숫자를 줄인다면, 국회의원 숫자는 오히려 360명 이상으로 늘려야 한다. 인구가 8,000만 명인 독일의 하원의원 숫자가 630명에 달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늘어나는 국회 의석은 전부 비례대표로 하고, 정당득표율대로 의석을 배분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한다면 대한민국 정치는 혁명적으로 바뀔 것이다.

국회의원 선거만이 문제가 아니다. 내년 6월에 치러질 지방선거제도도 바꿔야 한다. 국회와 똑같이 표심이 왜곡되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에서 200여 개에 달하는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이 <민의를 반영하는 선거법 개혁 공동행동>을 결성하고, 전국적인 운동을 시작하고 있다. 대선이 끝난 직후에는 더욱 집중해서 활동할 예정이다. 국회를 포위해서라도 반드시 선거법 개혁을 이뤄내겠다는 계획이다. 캠페인을 위한 홈페이지(www.changeelection.net)도 열었다. 선거법 개혁에 대한 대선후보들과 국회의원들의 입장을 확인할 수 있다.

2015년 2월에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국회의원 선거제도를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바꿀 것을 권고하기도 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시민들의 여론이다. 시민들의 여론이 만들어진다면, 국회도 선거법 개혁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촛불 시민혁명을 완성하는 길이다.

 

글_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변호사였지만, 10년째 휴업중입니다. 2011년 가을부터 5년간 녹색당 사무처장, 공동운영위원장을 맡았습니다. 지금은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를 맡고 있고, 득표율대로 의석을 배분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선거제도를 전면개혁하는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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