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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드라망 칼럼

  [삶과 인드라망] ‘바람’과 ‘기대’가 옅어지는 삶
  글쓴이 : 인드라망     날짜 : 17-09-05 18:04     조회 : 4555    

‘바람’과 ‘기대’가 옅어지는 삶

나이를 크게 의식하지 않고 살다가 불현듯 내 나이가 정확히 몇 살이지 하고 헤아려 보다가 놀랐던 적이 있다. 스스로의 몸가짐에 더욱더 신중해져야 할 적지 않은 나이이다.

나이가 먹어가면서 내 스스로에게 대견해지는 지점이 있다면 오랜 세월 내 삶을 꾸려 가는데 큰 버팀목이 되어 왔던 ‘기대’나 ‘바람’이 많이 옅어져 가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시시때때로 변해가며 내 가슴속에서 자리했던 수많은 바람들, 그리고 나를 포함한 사람과 일에 대한 기대가 더 이상 내 삶을 가꿔가는데 큰 동력으로 자리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언제인지 정확하게 기억되지는 않지만 ‘기대’를 가지고 사람을 대하다 보면 그 사람의 처지와 형편은 제대로 살피지 않고 상대를 내 멋대로 규정지어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사실에 눈을 떴다. 그리고 내게 맡겨진 일과 관련한 부분에서도 비슷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람’에 기초해서 일을 대할 때 분명 추진력이 크게 형성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과정보다는 결과에 집착하게 되고 결국 성공과 실패의 논리에 매몰되어 지금 현재. 매 순간순간 파도처럼 다가오는 日常이 주는 의미와 소중함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기회를 놓치며 살고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무수한 생을 거쳐 오면서 더욱 단단해져 본능처럼 내 몸 깊숙이 자리한‘기대와 바람’에 기초한 삶의 방식을 내려놓기 위해 구체적으로 시도했던 것 중 하나가 귀정사의 일지(日誌)를 쓰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시간이 잔잔한 호수의 수면처럼 산중 작은 절에서의 하루는 큰 변화 없이 단조롭고, 대동소이한 일의 반복이다. 그런 소소한 일상의 흐름 속에서 미미한 파동 하나라도 무덤덤하게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내 안으로 가져와 살피며 그 안에 담긴 새로운 풍경과 경이로움을 발견하고 싶었다.

그 과정을 굳이 글쓰기를 통해서 해 보려고 했던 것은 아무래도 글로 표현하려면 한 사안이 지닌 내용을 이해하는 데 있어 내 느낌과 감성에 기반을 둔 표피적인 이해가 아니라 더욱 세심한 관찰과 이해를 위한 고심을 하여야 하고, 그런 과정을 통해 사람과 사안(事案)에 대한 신중한 태도가 새로운 나의 습(習)으로 정착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덤으로 평소 생각의 흐름이 중구난방이어서, 어떤 사안에 대해 조리 있게 파악하는 것이 서툰 내가 지닌 문제도 풀어 보고 싶었다. 

매년 귀정사에 오셔서 철야기도를 하시는 제주도 보살님들이 계시다. 20여 년 전 정신적 육체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었을 때 3년 정도 제주도에서 지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부터 인연이 된 분들이다. 그 후 귀정사에 건축불사와 범종불사(佛事)등이 펼쳐지면 먼 곳에서 큰 도움을 주곤 하셨다. 개인적으로나 귀정사의 입장에서나 이래저래 아주 각별한 보살님들이다. 모임을 구성해서 매월 1번씩 자체적으로 기도 모임도 하고, 두 달에 한 번 정도는 육지에 있는 절을 찾아가 철야기도를 한다고 한다. 이분들의 기도에 집중하는 힘과 인내력은 절집에 오래 살아온 나로서도 잘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이다.

어느 해, 철야 기도를 마치고 난 다음 날 아침 내 방에서 보살님들과 차 한 잔 나누며 얼굴을 마주했다. 모임을 이끄시는 노(老)보살님이 환하게 웃으시며,
“우리 모임 식구들이 대체로 잘 되고 있어요. 누구의 아들은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누구 남편의 사업은 어려웠던 고비를 넘기고 요즘은 잘 풀리고 있습니다. 부처님이 기도를 잘 들어 주시는 것 같아요.” 그리고 손가락으로 한 보살님을 가르치며 “저 보살 딸이 오는 11월에 중요한 시험이 있다고 해요. 특별히 축원 좀 해 주세요.”라는 이야기를 건네셨다.

이런 부탁을 받으면 나 스스로 좀 어색하고 편치가 않지만, 예전부터 비슷한 부탁을 받을 수밖에 없는 처지라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래도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는 편한 관계여서 평소 마음속에 걸려 있던 부분을 말씀드렸다.

“보살님들처럼 기도를 열심히 하는 분들은 절집에 오래 살았지만 참으로 보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기도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그런 개인의 바람과 기대에 기초한 기도는 우리의 소중한 스승인 부처님을 친근한 우애(友愛)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차가운 적의(敵意)로 대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옛 스승님들이 가르치신 기도는 바라는 바가 잘 이루어지는 ‘소원성취’식 기도가 아니라, 스스로 바라는 바, 내 고집하는 바가 점차 소멸되어 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 기도의 복(福)이고 가피력(加被力)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절에 다니는 대부분의 보살님도 기도하며 기원하는 바가 대동소이하다. 더 안타까운 것은 신도들을 이끄는 사찰이 앞장서서 그렇게 조장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이 우리 현실이다. 그래서 입시철만 되면 많은 절에 입시 특별기도를 알리는 현수막이 내걸리고 영험이 있다고 소문난 절에는 대목장 선 것처럼 사람들로 붐빈다. 절집에서 벌어지는 이런 기이한 일들이 긴 세월 이어져 온 일이라 이제는 너무도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진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오랜 세월 몸에 밴 관행과 생각을 낯설고 희미하게 만드는 노력은 그 변화가 눈에 띄지 않게 더디지만, 시도 자체가 항상 작은 깨달음과 즐거움을 안겨준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을 멈추지 않는 것이 스승님을 적의로 대하는 태도에서 벗어나는 길이지 않을까 싶다.

 

글_ 김중묵 인드라망수련원장
인간에 대한 따뜻한 마음을 바탕으로 사회문제를 해결 하려는 열정을 갖고 수련원과 사회연대쉼터 인드라망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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