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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드라망 칼럼

  [삶과 인드라망] ‘응병여약’의 대화법과 평화
  글쓴이 : 인드라망     날짜 : 18-06-08 11:51     조회 : 1683    

‘응병여약’의 대화법과 평화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제1실현지인 산내마을에 와서 산 지 1년 반이 되어간다. 주로 20, 30대 청년들과 섞여 살면서 무엇이든 기꺼이 배우려 애쓰지만, 때론 고민스럽거나 잘 안 고쳐지는 것도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대화 습관이다. 얼마 전에는 회의 석상에서 누군가의 의견이 ‘부적절하다’라고 말했다가 핀잔을 들었다. 사실 부적절하다는 말은 ‘잘못됐다’, ‘틀렸다’라는 말에 익숙한 어른 세대에게는 꽤 점잖은 축에 속하는 표현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거의 들어본 적이 없는 말이고, 누군가에게는 송곳처럼 날카로운 말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을 알았다. 거기에는 남의 의견이나 행위를 평가하는 자체를 터부시하는 정서도 연관이 있을 것이다.   

산내 와서 가장 많이 들은 말 중의 하나가 “(그렇게 말씀하시면 제가)…불편하다”는 말이었다. 이 말에 매우 강력한 어필의 뜻이 담겨있다는 걸 처음에는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렇지. 옳은 말이 편케만 들리지는 않을 테니까” 하면서 개의치 않았다. 때로는 논리를 앞세워 상대를 굴복시키는 대화도 마다치 않던 나에게 불편하다는 정도의 표현이 심각하게 들리지 않은 건 어쩌면 당연했을지도 모른다. 무식한 데다 용감하기까지 해서인지 수도 없이 ‘불편하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그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이제는 물이 들어서 가끔 나도 이 수줍은 표현을 쓰곤 한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불편하다’는 표현은 여전히 나에게 조금 불편하게 다가온다. 

20, 30대 청년들(편의상 청년세대라고 하자)과 대화하면서, 대화 패턴에 큰 차이가 있음을 느낀다. 우선 인칭이 다르다. 청년세대는 대체로 1인칭 화법을 쓴다.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저는 원하지 않아요.” 하는 식으로 자기 입장에서 의견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기성세대들은 대부분 3인칭이다. 나라는 표현은 거의 없고 (사실은 자기 의견이면서도) “그것은 틀려요. 맞아요.”라고 3인칭 관찰자 시점에서 말한다.

또 청년세대는 대체로 느낌을 중시하지만, 기성세대 대개는 견해를 중시한다. “저는 좋은 것 같아요. 예뻐요”와 같이 청년들이 자기 느낌을 말하는 것과 달리, 기성세대는 옳고 그름을 우선하여 이야기한다. 돌이켜봐도 내 느낌은 물론이거니와 내 의견을 말하면서 살아본 적이 별로 없다. 어릴 적에는 권위 있는 어른들의 의견을 수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머리가 굵은 이후로는 대의와 가치에 압도되어 내 느낌, 의견을 표현하는 것은 죄스럽고 사치스러운 일이라 생각했다. 집단이 개인을 압도하는 시절에 산 기성세대 대개에 공통으로 나타나는 대화습관이라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청년세대들이 가까운 사이에도 ‘00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라는 권유식 표현을 주로 쓰는 반면 기성세대가 ‘00해야한다’는 당위적 표현을 쓰는 것도 차이다. 물론 성숙한 어른들은 권유식 표현을 많이 쓰고 나도 노력하는 편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해야 한다’ 혹은 좀 순화시켜 ‘해야 하지 않을까요?’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앞서 말했듯이 청년세대들은 주로 ‘(자기)의견’을 말하지만, 기성세대들은 ‘(관찰자인 듯)평가’한다. 그런데 요즘 청년들은 누군가가 자기를 평가하는 자체를 싫어한다. “그건 아니야”와 같은 부정평가뿐만 아니라, “괜찮네. 잘했어”라는 긍정평가도 정도만 차이가 있을 뿐 누군가에게 평가 대상이 된다는 자체에 거부감이 크다. 열심히 살기만 하면 대체로 기회가 보장되었던 기성세대들과 달리 경쟁, 그것도 소수만을 위한 극도의 경쟁이 고착된 사회 풍토에서 자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직장에서 세대 간 소통의 어려움이 있다면 아마 이것이 가장 큰 이유이지 않을까 싶다.

사실 우리 세대는 내 생각이 어떻고 저떻고 표현하는 것을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하여 금기시하는 풍토에서 자랐다. 나와 내 느낌은 억압해야 하는 것이었고, 내 생각을 당당히 말하는 것은 아무리 옳아도 돈키호테처럼 튀는 행위로 간주되었다. 그렇다 보니 대화를 할 때도 ‘나’는 쏙 빠지고, ‘우리’만 있었다. 어렸을 땐 친구집단이 우리였고, 청년 때는 이념을 같이하는 동지가 우리였다. 우리끼리는 의리를 위해, 대의를 위해 허물을 들춰서는 안 되었고 우리 바깥의 것들은 단호하게 비판하며 맞서 싸웠다. 안과 밖이 다르고, 공과 사가 다른 것이 익숙한 풍토였다. 오늘의 한국사회에 만연한 일상의 폭력은 이러한 이율 배반에서 묵혀져 온 것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앞으로 이 땅에서 살아갈 미래 세대에게 미안한 점이기도 하다. 

그런데 견해를 나(엄밀히 말하면 우리)로 삼는 기성세대의 습관은 문제가 있고, 느낌을 나로 삼는 청년세대의 풍토는 괜찮은 것인가? 내 느낌이, 마음이 동하지 않으면 우리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아야 하는가? 내 느낌, 마음은 어떻게 생겨난 것인가? 그것들은 예외 없이 나 아닌 것과 접촉하며 생겨난 것이다. 나를 자극하는 바깥의 것들은 누가 만든 것인가? 수많은 다른 나가 만들어 낸 것이다. 거기에는 좋은 동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이것이 부인할 수 없는 실상인데도 과연 나와 내 느낌에 의존하는 것은 지혜로운 태도인가? 기성세대들이 집단 과잉, 견해 과잉에 치우쳤다면,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청년들 스스로 자기 과잉, 느낌 과잉에 치우쳐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청년세대들이 이런 질문을 던져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종종 어려움을 느끼지만, 세대 간 대화 패턴의 차이가 극복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십수 년 밖에 안 되는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나와 청년세대 간의 대화 패턴 자체가 크게 차이 남을 알게 됐고, 그 차이를 서로 인정하며 더 나은 쪽으로 진화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짧게 결론을 말하면 자기 과잉이나 집단 과잉, 느낌 과잉이나 견해 과잉과 같은 양극단을 넘어 중도적인 대화 패턴을 찾아내야 하지 않는가 싶다.

나는 두 시간 정도 강의하면 기진맥진할 정도로 말에 사용하는 에너지 소모가 큰 편이다. 그래서 말보다는 글이 편한 축에 속한다. 말을 할 때도 체계 있게 논리적으로 잘 하지도 못하고, 상대에 맞게 차근차근 말하는 데도 익숙하지 않다. 뭔가 당위에 사로잡히면 용건 중심으로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여 남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우리 대학의 청년들한테도 알게 모르게 준 상처가 적지 않을 것이어서 미안한 마음, 조심스러운 마음을 늘 한 켠에 품고 지낸다. 

남의 말로 상처받거나, 누군가에게 말로 상처 주고 후회한 경험 한 두 번쯤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말이라는 것은 뱉어진 순간 시비의 대상이 되기 쉽다. 그래서 말은 늘 조심스럽다. 그렇다고 말을 안 하고 살수도 없으니 말도 어찌 보면 어느새 중늙은이가 된 나처럼 ‘계륵’ 같은 신세다.

말을 별로 하고 싶지 않은 순간에 내가 용기를 내는 것은 붓다 때문이다. 붓다께서 깨달음을 얻고 난 후 전법을 망설이는 모습이 경전에 나온다. 이런저런 설명이 붙었지만, 따지고 보면 말이 갖는 한계와 효용을 놓고 두루 고민한 흔적이 아닌가 싶다. 가끔 어지간하면 말하지 말자고 하다가도 붓다께서 긴 침묵을 깨고 말로 전법에 나선 일화를 생각하며, 말이 필요할 때는 주저 없이 하려 애쓴다. 

문제는 어떻게 말할 것인가이다. 붓다는 어떻게 대화하셨을까? 한마디로 정리하면 ‘응병여약’의 대화법이지 않았을까 싶다. 붓다는 대화하는 이가 처한 처지와 상황에 따라 느낌을 중시할 때는 느낌을 중시하고 견해를 중시할 때는 견해를 중시하셨다. 권유해야 할 때는 부드럽게 권유하고 마땅한 일에는 당위로 말씀하셨다. 단호함이 필요할 때는 단호하게 말씀하셨고 따뜻한 위로와 격려가 필요할 때는 다정하게 말씀하셨다. 그리고 침묵해야 할 때는 오랫동안 침묵하셨다. 한마디로 맥락과 상황에 따라 자유자재로 말씀하신 분이 붓다가 아닌가 싶다. 그렇게 말을 잘 쓰면서도 말로부터 자유로워짐을 통해 붓다는 일상의 평화를 누리셨다. 나로서는 아직 언감생심의 먼 길이지만, 그래도 그 길로 가는 것을 멈추지는 않을 작정이다.

 

글_ 정웅기 생명평화대학 운영위원장
지리산 실상사 생명평화대학에서 청년들과 공부하며 새로운 사회, 길을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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