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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본소득이 빈곤문제 해법이다_ 하승수
  글쓴이 : 신구슬     날짜 : 16-01-04 12:54     조회 : 2899    

 

한국의 빈곤은 심각한 수준이다. 수치상 빈곤도 심각하지만 배제와 소외, 가난한 사람들이 겪는 모멸감도 심각한 수준이다. 그러나 한국사회의 인식 수준은 여전히 빈곤을 개인책임으로 돌린다. 빈곤의 늪에 빠져 있는 사람을 '이등국민'처럼 취급한다. 기초생활수급제도 등은 그 대상에게 가난을 증명하기를 요구한다. 부양의무제도가 폐지되지 않는 것도 빈곤의 책임이 사회구조에 있다고 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빈곤의 일차적 책임은 개인에게 있지 않다. 임금이 낮아서 일을 해도 가난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것이 개인의 책임인가? 자동화, 정보화로 일자리가 줄어들고, 산업구조 변화로 해고되는 것이 개인의 책임인가? 날로 뛰는 임대료로 인해, 건물주의 횡포로 인해 벼랑 끝에 몰린 자영업자나, 빈곤가정에서 태어나 각종 기회를 잃고 자라는 아동이나, 선천적 장애나 사고로 노동능력을 상실한 사람에게 개인의 책임을 물을 것인가? 빈곤에 대한 근본적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빈곤을 사회의 책임으로 인식하는 것은 제대로 된 논의의 출발점이다.

 

그럴 때 빈곤을 개인의 책임으로 보는 생각에 기초한 기존의 선별복지제도 틀로는 빈곤문제를 풀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 일자리를 늘려서 빈곤을 해결한다는 것이 보수 쪽의 오랜 논리이지만, 이제 더이상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는 상황에서 그것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경제가 성장하면 그 과실을 가난한 사람들도 결국 받게 된다는 낙수효과는 허구임이 드러났다. 그래서 보편적 소득보장제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기초연금(노인의 70%에게만 지급된다는 한계는 있지만)이 지급되면서 한국에서도 보편적 소득보장 논의의 물꼬는 트였다.

 

비노동소득, 시민이기 때문에 받는 배당

 

빈곤이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사회의 책임이라면, 빈곤을 면할 수 있는 소득을 보장하는 것도 사회의 책임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식의 논리가 횡행하는 사회에서 복지는 여전히 '시혜'로 인식된다. 그래서 일정한 최소 소득을 보장받는 것은 당연한 권리라는 것을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것이 중요하다. 실마리는 시민배당이라는 개념이다. 시민배당은 한 사회공동체의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공유재로부터 나오는 수익에서 배당을 받을 수 있다는 개념이다. 미국의 알래스카주가 석유수입으로 실시하고 있는 주민배당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알래스카 주민배당 제도는 모든 주민에게 노동 여부와 관계없이 매년 일정액을 지급한다. 공식적 명칭은 알래스카영구기금 '배당금'이다. 알래스카라는 지역공동체의 일원이기만 하면 무조건 동일한 금액을 받는다. 이 제도는 1982년부터 실시되었지만 미국사회 전체의 관심은 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최근 날로 심해지는 빈곤과 불평등, 생태위기의 심화등과 함께 미국에서도 알래스카영구기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매년 지급되는 배당금 액수는 그렇게 많다고 볼 수는 없다(2014년 기준 1884달러). 그러나 '매년' 지급된다는 것이 중요하다(1982년부터 2010년까지 쭉 주민배당금을 받은 사람은 총 4만 3590달러를 받았다). 알래스카 주민배당은 미성년에게도 지급된다. 부모에게 지급되는 형식이다.

 

이런 주민배당금 지급이 빈곤이나 불평등에 미치는 효과는 어떨까? 알래스카주 내부에도 소득격차가 있다. 가난한 지역일수록 주민배당금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알래스카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웨이드햄프턴)의 경우 주민배당금이 주민 1인 현금소득의 13%이다). 자료에 따르면, 알래스카주는 1만 달러 이하 수입으로 생활하는 가구의 비율이 미국의 다른 어떤 주보다도 낮다. 알래스카는 1980년에 미국에서 가장 소득분배가 불평등한 주였지만, 2000년에는 미국에서 가장 평등한 주에 속하게 됐다. 알래스카는 이 기간 동안 하위 20%의 소득증가율이 상위 20%의 소득증가율을 앞지른 유일한 주였다. 소득분배 불평등을 보여주는 지니계수에서도 알래스카는 미국에서 두 번째로 평등한 주로 나타난다. 물론 이것이 온전히 주민배당 때문일 수는 없겠지만 주민배당이 소득불평등을 개선하는데 긍정적 영향을 준 것은 분명하다.

 

알래스카는 석유가 있어서 가능한 것이고 다른 곳에서는 주민배당제도가 불가능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있다. 여기에 대해, 석유 같은 지하자원이 없는 미국 버몬트주를 상정해 시행한 연구가 있다. 게리 플로맨호프트는 버몬트주의 공유재로부터 나오는 수익으로 시민배당을 지급한다고 가정했을 때 얼마를 지급할 수 있는지를 연구했는데, 연간 1972~10348 달러를 지급할 수 있는 것으로 나왔다. 이 연구는 물, 깨끗한 공기, 광물, 숲, 물고기와 야생동물, 토지처럼 자연적으로 형성된 것뿐만 아니라 금융시스템, 인터넷, 방송주파수처럼 사회 전체의 자산이라고 할 수 있는 것도 공유재로 보았다. 생각해보면 방송주파수가 처음부터 특정한 기업의 소유는 아니었다. 이런 공유재를 사유화함으로써 올리고 있는 수익을 환수하여 시민 모두에게 배당을 지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확장해서 개인소득의 70% 이상을 사회공동체의 몫으로 돌려야 한다는 생각도 나왔다. 개인이 벌어들이는 소득을 온전히 자신만의 노력의 소산이라고 볼 수 없는데, 사회 공통의 유산(지식, 제도 등)의 덕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주장을 한 대표적인 학자는 허버트 사이먼이다. 1978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그는 개인이 이루는 성과의 90% 이상이 축적된 사회자본(과학지식, 사회제도 등)에 의존한다고 보았다. 한마디로 자기가 잘나서 돈을 많이 버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1998년에 미국인이 1인당 2만 5000달러의 소득을 버는 원인의 3분의 2는 그 사람이 미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과거로부터 내려온 지식이나 사회제도 등이 '공통된 유산'으로 쌓여 있다는 것이다. 이 공통의 유산이 기여한 몫을 공동체에 내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그는 모든 소득에 대해 70%의 단일세율로 과세해서 기본소득의 재원으로 사용하자는 주장을 한다. 그렇게 하면 미국정부가 필요로 하는 재정을 모두 충당한 다음에도 모든 미국사람에게 1년에 8000달러(4인 가구면 연간 3만 2000달러)를 기본소득으로 지급할 정도의 세금이 걷힌다고 한다.

 

이처럼 노동을 해야만 소득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있는 것이 시민배당이라는 생각이다. 미국에서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피터 반스는 '모두를 위한 일자리'(완전고용)는 낡은 발상이라고 본다. 안정된 급여를 보장하는 일자리가 더이상 만들어지지 않는 객관적 현실을 무시한 얘기라는 것이고, 그래서 '모두를 위한 비노동소득'이 필요하다고 본다. 소득이 임금노동에서만 나온다는 생각을 버리고, 공유재로부터 배당을 받는 '비임금소득'을 받아들이자는 것이다. 이 방법만이 무너지는 중산층을 지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노동과 연계되지 않은 보편적 소득보장 정책을 설계한다면 어떤 효과가 있을까?

 

기본소득으로 기대되는 효과

 

보편적 소득보장 정책을 '기본소득'이라는 이름으로 국가 차원에서 채택한 사례는 지금까지 없지만, 노인기초연금과 아동수당 등 여러 형태로 현금소득 보장을 하고 있는 사례들은 있다. 비록 전 연령에 걸친 보편적 소득보장은 아니지만 만 65세 이상 노인인구에 대해 보편적 소득보장을 할 경우 노인빈곤율의 감소에 큰 효과가 있다는 것은 증명되어 있다.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시장소득 기준 49.1%, 가처분소득 기준 35.6%에 달한다(2013년 기준).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높고, 전체 인구의 빈곤율(13.7%)보다도 훨씬 높다. 노인빈곤율이 가장 낮은 나라는 네덜란드로 1.6%(전체 빈곤율 7.8%, 2012년 기준)에 불과하다. 네덜란드는 다층적 연금구조를 갖고 있는데, 주목할 것은 노령연금제도이다. 기초노령연금(AOW)은 커플인 경우에는 최저임금의 50%, 싱글인 은퇴자의 경우에는 최저임금의 70% 수준을 지급하며, 재원은 조세(17,9%의 사회보장세)로 마련한다. 50년을 완전가입기간으로 하고 가입기간이 모자라면 부족한 1년마다 2%를 감액한다. 보험료 기여에 관계없이 거주조건에 의해 지급하므로 소득재분배 기능이 매우 크다. 노인빈곤율 9.1%(전체 빈곤율 9.8%, 2011년 기준)인 뉴질랜드로 정액 기초연금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20세부터 10년간 거주하면(50세 이후 5년 포함) 65세부터 연금을 수령할 수 있다. 덴마크도 기초연금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15~65세에 덴마크에 최소 3년 이상 거주하고 수급연령 65세에 도달한 자가 지급받되, 총 거주기간이 40년 미만인 경우 그 비율에 따라 금액이 축소될 수 있는 형태이다. 임금노동을 통해 소득을 올릴 수 있는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고, 임금 수준도 낮을 수밖에 없는 노인세대는 전체 인구 대비 빈곤율이 높을 가능성이 크므로 이렇게 기초연금을 통해 노인빈곤율을 줄이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기초노령연금제도가 2007년부터 도입되었고,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에 의해 기초연금제도로 확대, 개편되었다. 그러나 전체 노인의 70%에 국한해서 지급될 뿐만 아니라 지급액이 낮고(2014년의 경우 1인당 20만원, 부부 합산 32만원), 소비자물가 상승률에 따라 매년 올라가지만 상승액도 매우 낮다는 문제가 있다. 70%에 국한한다는 것은 심사에 의한 탈락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므로 불안정성도 크다. 액수도 낮지만 그나마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따라가지 못하므르 실질적 지급효과는 시간이 갈수록 떨어질 것으로 예측된다. 그러나 이런 식의 기초연금제도라도 없기보다는 노인빈곤율을 줄이는 데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경우 기본소득을 모든 연령대에 보편적으로 지급한다면, 빈곤해소에 어느 정도의 효과가 있을까? 김교성 교수가 2009년 한국복지패널조사를 활용해서 수행한 연구에 따르면, 모든 국민에게 연령에 따라 매월 30~40만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할 경우 절대빈곤율은 1.4%까지 떨어진다. 노인에게 매월 50만원을 지급하는 노인중심형 모델에서는 빈곤율이 0.8%(노인빈곤율은 0.1%)까지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상을 종합하면 보편적 소득보장 정책이 빈곤해소에 가장 강력한 효과가 있는 정책인 것은 분명하다.

 

정치적 실현 가능성의 문제

 

정치적 실현 가능성도 보편적 소득보장이 선별적 복지를 강화하는 것보다 오히려 높을 수 있다. 코르피와 팔메의 '재분배의 역설'에 따르면, 복지지출을 가난한 사람에게 집중할수록 가난한 사람에게 불리해진다. 선별복지일수록 가난한 사람에게 불리하고, 보편복지가 가난한 사람에게 유리하다. 그 이유는 선별복지로는 재분배의 규모를 키우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또 중산층의 지지를 얻으려면 보편적 소득보장이 더 설득력이 있다. 특히 시민배당 개념에 기초한 정책을 설계한다면 더욱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기본소득이 실제 정책으로 채택되려면 정치구조의 변화가 필요하다. 현재와 같은 양당제 정치구조에서는 기본소득 같은 혁신적인 정책이 힘을 얻기 어렵다. 비례대표제의 전면적 확대 같은 정치제도 변화를 통해, 다양한 정치세력들이 정책으로 경쟁하는 구조가 되면, 기본소득제가 실현되기에 좋은 환경이 만들어질 것이다. 한편 기득권 정치세력도 기본소득에 대해 적대적이지 않을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대선에서 모든 노인에게 월 20만원의 기초연금을 지급하겠다고 공약한 것이나, 모든 중증 장애인에게 장애인연금을 지급하겠다고 공약한 것을 보더라도 '부분 기본소득' 정도는 기득권 정치세력도 정치적 구호로 언제든 채택할 수 있다. 앞으로는 일자리가 줄어들고 빈곤과 불평등이 심화될 것이 예측되므로, 기본소득의 정치적 실현 가능성 자체는 커질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어떤 주체가 어떻게 정치적 힘을 결집시켜내느냐이다. 그래서 올바른 철학과 지향을 가진 기본소득 정책을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

 

재원 마련의 문제

 

기본소득을 현실의 정책으로 만들 때에는 흔히 재원과 기존의 복지제도와의 관계가 문제로 대두된다. 우선 "재원 마련이 가능한가, 불가능한가?" 라고 물어보면, "가능하다"는 답이 나온다. 기본소득 지급을 위한 재정능력을 따질 때에 가장 먼저 볼 것은 국민부담률이다. 조세와 의무적 사회보장기여금을 합친 국민부담률을 봤을 때, 대한민국은 기본소득 지급을 위한 추가재정 마련이 충분히 가능한 국가이다. 그동안 한국은 너무 낮게 국민부담률을 유지했기 때문에 그만큼 국민부담률을 올릴 수 있는 여지가 크다.

 

<OECD 세입 통계 2014>를 보면(2013년 기준), 국내총생산(GDP)대비 세수입 비율은 OECD 평균 34.1%이다.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높은 국가는 덴마크로 48.6%이고, 대한민국은 24,3%이다. 정확하게 덴마크의 절반이다. 만약 대한민국이 OECD 평균 수준으로 조세부담률을 올린다면 추가로 만들어질 재정 규모는 어느 정도일까? 2018년 대한민국 GDP는 1905조원에 달할 것으로 정부가 예상하고 있으므로, 추가로 마련되는 돈은 188.6조원에 달한다. 국민 1인당 매월 30만원을 지급할 수 있는 정도이다. 만약 덴마크 수준으로 조세부담률을 끌어올린다면 1인당 매월 60만원씩 지급하고도 남는다. 강남훈 교수는 이를 추가 복지재정 잠재력이라고 부른다. 이처럼 증세를 통해서 기본소득 재원을 마련하는 것은 가능하다. 대한민국의 국민부담률이 극히 낮은 수준이기 때문에 경제, 재정적 측면만 따질 때 충분히 가능하다. 일부에서는 국민부담률을 단기간에 급격히 올리는 것은 무리라고 한다. 그러나 역사적 경험은 반대로 말한다.

 

유럽 국가들을 보면 조세부담률을 5~10년 기간 내에 10% 정도 끌어올린 사례들이 많다. 덴마크만 해도 1965년 조세부담률은 29.5%였지만 6년 만인 1971년에는 40.8%까지 끌어올렸다. 그래서 경제에 충격이 가해져서 덴마크가 망했는가? 덴마크는 세계 최고의 복지 수준, 행복도를 보이고 있는 국가이다.

 

주의할 것은 증세가 경제성장을 전제로 한 것처럼 얘기되는 측면이다. 경제성장과 세수입은 반드시 비례하는 것이 아니다. 조세란 과세 대상과 세율 등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서 경제성장과 연동될 수도 안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온실가스 배출에 부과하는 환경세를 매년 올린다고 가정해보자. 실제로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 이런 정책이 필요한 상황이다. 석탄, 석유 같은 화석연료 사용이 획기적으로 줄어들기 전까지는 세수입이 계속 늘어날 것이다. 환경세 과세로 인해 실제로 경제성장이 저해된다고 하더라도 환경세 징수액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지금 담배세 인상에 대해서 논란이 많지만 담배세율을 올림으로써 담배 소비의 감소에도 불구하고 담배세 세수가 증가한 것과 같은 이치이다. 상속세를 강화하는 것도 경제성장과 직접 연동되지 않는다. 설사 경제성장이 제로가 되거나 감소하더라도 상속세 비과세 범위를 축소하고 세율을 올리면 상속세 수입은 늘어난다. 따라서 앞으로 경제성장이 안될 것이므로 증세를 통한 재원 마련이 어려울 것이라고 보는 것은 지나친 기우일 수 있다.

 

증세의 방향에 대해서는 그동안 많은 논의가 있었다. 단계적으로 생각해보는 것도 필요하다. 한국은 조세부담 수준은 낮으나 공평하지 못하고 투명성이 낮기 때문에 조세 저항감이 큰 편이다. 그래서 두 단계로 나눠서 증세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 1단계는 세부담에 대한 불만이 큰 중하층 근로소득자의 직접적 세부담을 늘리지 않고 증세를 한다. 상속세 강화, 불로소득(부동산임대소득, 개발이익, 금융소득, 주식양도소득 등) 에 대한 과세강화, 부동산 보유세 강화, 탈세 근절, 재벌대기업과 고소득층에 대한 비과세, 감면축소, 법인세율 인상, 고소득자에 대한 소득세율 인상 등의 조치를 취해서 조세부담의 형평성을 높이는 것이다. 기후변화에 대비하고 핵발전의 단계적 폐지를 위한 생태세 징수를 통해서도 상당한 재원이 마련될 수 있다.

 

2단계는 보편증세를 한다. 이 단계에서는 1단계 조세개혁 조치를 통해 얻은 신뢰를 바탕으로 중하층 근로소득자에 대해서도 적정 수준의 증세를 한다.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근로소득자들의 불만을 줄이기 위해 면세점 이하의 근로소득에 대해서는 소득세를 내지 않는 등의 문제점이 있다. 그러나 덴마크 같은 국가에서는 소득이 많든 적든 일정 세율의 세금은 무조건 내도록 되어 있다. 일정 몫을 부담해도 그만큼 받는 것이 많으므로 중하층에게는 이익이 된다. 이런 방식이 사회적 연대를 강화하는 데 유리하다(덴마크는 전체 조세수입의 62%를 개인들의 각종 소득에서 징수하는데, GDP에서 개인소득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24.2%로 OECD 최고 수준이다, 참고로 한국은 개인소득세가 GDP의 4.0%이다).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 기본소득 재원을 위한 증세는 특별회계로 관리하여 다른 용도로 쓰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도 추진할 수 있다.

 

한편 증세뿐만 아니라 예산 낭비 근절 등 재정개혁을 통해서도 상당히 많은 재원을 확보할 수 있다. 연간 40조원에 달하는 토건예산을 절반만 줄여도 연간 20조원의 재원이 마련된다. 토건예산을 줄이기 위해서는 교통시설 특별회계를 폐지하는 등 제도개혁과 함께 토건예산 감축목표제, 대규모 개발예산에 대한 시민예산심의제 등을 시행할 수 있다. 한편 기본소득과 통합할 수 있는 일부 현금급여도 있다. 예를 들어 2015년 보건복지부 예산안에서 기초연금 예산이 7조 5824억원, 양육수당이 1조 1018억원이었는데 이런 부분은 통합이 가능할 것이다.

 

기존 복지제도와의 조정

 

기본소득의 쟁점 중 하나는 지급 수준이다. 논의가 필요하지만 재원의 조달 가능성 등을 생각하면 낮은 수준의 기본소득이 적정하다고 판단된다. 낮은 수준이란 최저생계비 또는 최저임금보다 낮은 수준이라는 뜻이다. 2007년 기본소득 모델을 발표한 핀란드 녹색당은 핀란드 최저생계비의 절반 수준 440유로 정도를 제시했다. 지난 3월 대의원대회를 통해 기본소득을 당론으로 채택한 한국 녹색당의 경우에는 월 40만원을 검토하고 있다. 이 정도 금액은 대한민국의 낮은 조세부담률을 감안할 때 충분히 마련할 수 있는 돈이다.

 

높지 않은 수준으로 기본소득이 지급될 경우, 기존의 복지제도와의 관계를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가 문제이다. 현재 현금급여 방식의 기초생활보장제도, 장애인연금제도 등과의 관계이다. 큰 틀에서는 모두에게 보장되는 기본소득이 기초소득 역할을 하고, 빈곤층이나 장애인들에게는 추가급여 또는 보충금여를 보장하는 형태로 하면 된다(부양의무제 폐지 등의 조치도 병행해서 진행해야 할 것이다). 기초생활수급자의 경우에는 최소의 인간다운 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수준의 소득을 보충적으로 보장해야 한다(기본소득과 합쳐서 매월 70만원은 넘어야 할 것이다). 지금 장애인연금법에는 '부가급여'라는 개념이 있다. 장애로 인해 추가로 발생하는 비용(의료비, 교통비, 재활치료비 등)을 보전하기 위한 것이다(2011년 장애인 실태조사 결과에서는 23만 6000원의 추가비용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정부가 지급하는 부가급여액은 8만원에 불과하다). 이런 부가급여를 현실화하여 기본소득과 함께 지급할 필요가 있다. 보충급여, 추가급여에 필요한 예산은 현재의 기초생활보장예산, 장애인연금 예산에서 상당부분 충당될 수 있다. 기본소득이 이미 지급된다면 기존의 복지예산으로 보충급여, 추가급여만 지급하면 되기 때문이다.

 

기본소득의 철학

 

기본소득이 지급된다면 빈곤층이나 장애인에 대해 보충적으로 지원하는 것에 대한 일반의 심리적 저항감도 줄어들 것이다. "나는 아무것도 받지 않는데 왜 저들에게 현금을 주나?" 식의 얘기는 성립하지 않는다. '함께 살자'는 방향으로 사고의 전환이 이뤄질 수 있다.

 

현금급여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공공서비스의 역할도 필요하고 주거, 의료 등과 관련해서는 별도의 정책적 고려가 필요하다. 특히 빈곤가구, 1인 가구 등을 위한 주거정책은 별개로 고민되어야 한다. 기본소득 외에 기본주거 정책이 필요하다. 공공임대주택 공급 확대, 1인 가구에 대한 저렴한 공동주거공간 확보 등의 정책이다. 주거문제는 궁극적으로는 대도시에 집중된 인구가 분산되면 풀기가 쉬워질 것인데, 기본소득이 지급되면 귀농, 귀촌이 활성화될 것이고, 이를 통해서도 대도시 주거문제가 어느 정도 완화될 것이다.

 

빈곤문제를 인간다운 방법으로 그리고 실효성 있게 해결하는 것은 보편적 소득보장 정책이다. 가난을 증명하라는 식의 선별적 복지정책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모멸감을,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복지에 대한 반감을 불러일으켜왔다. 사회공동체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권리로서 소득보장이 되고, 그것을 위해서 조세부담 등의 책임도 지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기본소득은 꿈같은 얘기가 아니라 충분히 실현 가능한 정책이다. 물론 사회적 설득논리, 보다 구체적인 정책화작업 등이 진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모든 혁신적인 변화는 전환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녹색평론, 145호(2015년 11-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