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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봄호(통권 194호)_계절 품은 농사 이야기

최고관리자
2023-07-20 15:45 375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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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 소박한 삶, 농사로부터

 

24절기의 입동과 소설을 지나면서도 겨울의 기운을 느끼지 못하는 계절의 변화가 그다지 반갑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지리산과 둘레길에는 단풍이 물들고 아침엔 소금을 뿌려놓은 듯 서리가 반짝거립니다. (사진1)

제철을 잃어버린 계절을 바라보는 농부의 마음은 조금 우울합니다. 사계가 뚜렷했던 것 같은 처음 농사를 시작했을 때도 가볍게 떨어지는 낙엽을 보면 그랬습니다, 초록을 잃어버린 작물의 잔사가 흩어진 논밭을 보는 마음도 심란합니다.

오행(五行)의 금()에 해당하는 가을은 농사의 결실을 얻지만, 땅의 기운으로 살아온 작물이 생을 마치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그런 이유로 농사가 끝난 들녘을 바라보는 우울한 마음은 농부의 직업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농부로 살기

 

농사를 잠시 쉬는 겨울에 무엇을 할지 고민을 합니다. 농사를 시작할 때부터 흙에서 사람 냄새를 느끼는 재미에 빠져서 가족에게 소홀했습니다. 지난 몇 해의 겨울을 돌아보면 미안한 마음에 가족과 해외여행을 다녀온 적도 있었고, 일당을 받는 농사일을 하러 다른 지역에서 겨울을 보낸 적도 있습니다. 물론, 집에서 농사 관련 책을 읽고 농사 글을 쓰면서 몸은 쉬지만 머리로 농사짓는 시간을 보낸 적이 더 많습니다.

제 주변의 농부들 겨울나기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농사일을 마무리하고 겨울에 해외여행을 다녀오기도 하고, 산 입에 거미줄 칠 수 없다며 남의 농사일을 해주고 받은 일당을 생활비와 다음 농사의 종자돈으로 모으기도 합니다.

농사로 생계를 이어가는 전업 농부의 삶은 천차만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해에 억대의 수익을 내는 농부도 있고, 수백만 원에 한숨짓는 농부도 있습니다. 농사가 산업이 되면서 농업도 적자생존의 절박한 생존경쟁이 된 지 오래되었습니다.

농지의 규모와 시설 등 여러 가지 조건에 의해서 농사가 돈이 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합니다. 농사를 돈 만들어내는 사업으로만 본다면 몸과 마음이 다칠 수도 있습니다. , 농사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불만과 고통의 삶이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사진 2)

농사로 돈을 벌어보겠다며 무리한 방법으로 시작했다가 불행한 삶으로 끝나버린 경우도 있습니다. 돈도 벌고 무엇에도 억압당하지 않는 삶을 누릴 수 있는 농사가 가능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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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의 속살

 

누구나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가장 행복하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그 일을 누구나 할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고, 각자의 생활환경이나 조건 때문에 불가능한 일도 많습니다. 그리고 누구나 하고 싶어하는 직업 중에서 농부의 삶을 살겠다는 사람은 아마도 가장 적으리라 확신합니다. 마음만 먹으면 농촌에 내려와 남아도는 농지에서 농사지을 수 있는데 왜 그럴까요?

농사는 힘들고 돈이 안 된다는 이유일 것입니다. 농사는 비와 바람과 추위와 더위를 피할 수 있는 사무실의 컴퓨터 앞에 앉아서 하는 일이 아닙니다. 오롯이 자연이 일으키는 현상을 온 몸으로 받아주는 넉넉한 마음을 갖지 않으면 고통스러운 노동이 될 수 있습니다.

편리한 농기계가 있더라도 끊임없이 걷고 몸을 움직이는 일이 농사입니다. 바쁜 농번기에는 새벽부터 해질녘까지 일하는 날들의 연속이기도 합니다. 일하는 시간이 정해진 것도 아니고 정기적으로 쉬어가는 휴일도 없는 직업입니다. 그나마 비가 많이 오는 날은 어쩔 수 없이 쉬는 날이 되기도 합니다.

농사는 하늘이 짓는다는 말을 실감하는 요즘의 기후위기 시대에 농사의 결과를 예측하기는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거나 땀은 거짓말하지 않는다는 말들은 농사에서는 예외가 많습니다. 오히려 운이 좋았다는 말이 설득력이 있습니다.

농사로 생계를 이어가는 농부는 수확의 결과에 웃기도 하지만, 한순간에 참담한 상황을 마주는 일이 농사입니다. 농사가 잘되었다고 해도 시장가격이 폭락하거나 인건비도 안 되는 작물을 갈아엎는 것이 농업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사진 3-넘치면 삭제)

농사가 잘되었더라도 판매를 못 하거나 제값을 못 받으면 농사를 잘 지었다고 해도 소용없습니다. 농산물 유통시장의 편리함은 있지만, 규격을 맞춰야 하고 생산자로서 가격에 대한 결정권이 없습니다. 시장이 원하는 대로 똑같은 공산품처럼 만들어야 하고, 결정된 가격을 주는 대로 받아야 합니다. 농산물의 가치와 농부의 노력을 알기보다는 공산품처럼 가격 비교를 하는 소비도 문제입니다.

 

농부의 자격

 

도시와 비교하면 모든 것이 불편한 농촌을 떠나고 돈이 안 되는 농사를 멀리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합니다. 도태되어 가는 농촌과 농업에 국가의 정책은 말잔치일 뿐이고, 사회의 관심이 낮은 현실도 문제입니다. 그것이 식량위기의 부메랑이 되어서 되돌아오리라는 이런저런 경고는 쌀값 폭락을 보면서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농부의 삶을 살아보겠다며 농촌으로 돌아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젊은 청년부터 환갑의 나이에 그야말로 남녀노소가 여러 가지 삶의 이유로 농사의 길에 들어오려고 합니다.

저 역시 비슷한 이유로 전업 농부의 삶을 시작했지만, 시작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순탄하게 내가 생각하는 농사가 된 적은 거의 없습니다. 그 말은 농사의 결과가 좋지 못한 때도 많았고, 농사 수입도 계산기에 나오는 숫자는 현실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한 일들을 겪으면서 나에게 맞는 작물이 있음도 알았습니다. 농사로 먹고사는 방법을 조금 알았다고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농사의 결과를 알 수 없듯이 그것이 지속가능한 방법일지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농사가 잘되고 제값을 받아서 경제적으로 안정이 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농사와 궁합이 맞아야 합니다. , 농사를 하면서 즐겁고 흥분되는 날들이 많은 재미를 느껴야 합니다. 그것을 저는 농부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자격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중요하게는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들여야 하는데, 그 기준은 새벽에 동트는 여명을 보면서 농사를 시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시간으로는 5시에서 6시쯤이 되는데 실제로는 그 시간보다 일찍 잠에서 깨어나 준비를 해야 합니다.

, 꾸준한 부지런함이 먼저 선행되지 않으면 농부의 삶은 순탄하지 않습니다. 주변에서 경험한, 농사를 포기하는 대부분의 이유이기도 합니다. 어릴 적 경험을 돌아보면 농촌은 새벽부터 논밭에 다녀와서 아침밥을 먹고 다시 일하러 나가는 게 당연했습니다. 내가 농부가 된 뒤에 반드시 그래야 되는 것이 농사임을 알았습니다. (사진 4)

지금도 일찍 농장으로 가는 길에 만나는 농부들도 언제나 정해진 시간에 일터로 가는 모습을 봅니다. 일찍 일어나지 못한다면 함부로 농부의 삶에 들어오기를 서두르지 말라고 하고 싶습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자연의 시간을 따르는 농사는 농부도 같은 시간에 움직이지 않으면 농사일을 제대로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새벽 공기가 주는 기운과 해가 뜬 뒤에 받는 기운은 많이 다릅니다. 제 경험으로는 자연의 시간에 움직이면 일도 잘 되고 힘이 솟습니다. 밝은 아침에 움직이면 몸이 무겁고 일이 잘 안 됩니다. 그것을 말과 글로 설명하기는 어렵고 경험을 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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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의 기술

 

농사는 표준화된 매뉴얼(설명서)이나 기술이 없습니다. 전기에너지(석유) 시스템으로 작동하는 온실의 스마트 팜(smart farm)이라는, 흙이 아닌 것에서 키워내는 작물은 매뉴얼이나 기술이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입니다만. 저는 비바람을 피할 수 없는 노지에서 화학비료와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농사의 경험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농사는 오래된 경력보다는 짧더라도 농사를 이해하는 경험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똑같은 방법의 10년 농사보다는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 본 5년 농사 경험이 예측 불가능한 기후와 농사 생태계의 변화에 잘 대처할 수 있다고 봅니다.

다양한 경험의 농사가 가능하려면 흙과 작물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하고, 그것의 토대는 농사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해를 못 하는 농사는 악순환의 연속이 될 수 있고 결과도 좋지 않습니다. 물론, 이해를 하는 농사를 짓더라도 기후변화에는 별 다른 방법이 없기도 합니다. (사진 5_넘치면 삭제)

요즘 농산물 가격이 비싼 이유도 농사가 잘 안 되었기 때문입니다. 농사를 잘 짓던 농부들이 담합해서 모두가 농사를 일부러 망쳐버린 것이 아닙니다. 자연환경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는 농사는 갑작스러운 기후변화에 어쩔 수 없이 한 순간에 모든 것을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농사 공부를 하는 방법은 다양하고, 많은 농사 교육이 농업 관련 기관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가장 좋은 농사 공부는 머리로 생각하고 몸으로 직접 농사를 하면서 끊임없는 질문과 답을 스스로에게 하는 방법입니다.

농사를 시작한 이후로 좋아하는 책 읽기는, 농사 관련 서적만 겨울에 여러 권을 몰아서 읽고 있습니다. 다른 농부의 농사 경험에서 얻어지는 것들도 많은데, 잘되는 농사는 왜 잘되었는지 안 된 것은 왜 그런지 관찰하고 생각합니다. 내가 농사짓는 지역의 기후와 흙의 상태를 살피는 일도 매우 중요합니다. 남의 농사와 지식을 무조건 따라가기보다는 나의 농사에 맞게 응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농사를 처음 시작하면서부터 잘할 수는 없습니다. 무수한 시행착오와 예상치 못한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해마다 똑같은 농사를 짓더라도 한 번도 똑같은 과정과 결과가 나온 적은 없을 만큼 농사는 매우 다양한 현상을 보이는 자연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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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 소박한 삶

 

농사는 인간의 삶(생명)과 바로 연결되는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천금과도 바꿀 수 없는 생명을 살리는 일이지만 현실에서 농사는 돈이 안 되는 직업입니다. 온갖 수식어로 농사와 농부를 찬양하는 모습을 보면, 어머니의 말씀이 촌철살인입니다. “그렇게 좋은 것을 그들은 왜 안 한다냐.”

농사는 예술이 아니라 먹고사는 일이라서 처음 시작을 잘해야 합니다. 머리로만 농사를 생각했다가 몸이 움직이지 않으면 힘듭니다. 충분한 준비와 작은 농사 경험이라도 해보라고 권합니다. 텃밭 농사를 해보는 것도 좋고 농촌에서 농사 체험도 좋은 경험이 됩니다.

농부가 된 이후로 농사로 얼마나 돈을 벌고 있는지 궁금해합니다. 제 대답은 항상 똑같은 밥은 먹고 살아요.’입니다. 얼마 정도의 돈을 벌어야 많은 이들이 농부의 삶을 살겠다고 할까요? 분명한 점은 농사는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 억지로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일입니다. (사진 6)

단순하고 소박한 삶을 살아내기 위한 방법으로 저는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는 농부의 삶을 선택했습니다. 물론, 돈 욕심이 없는 농사를 안 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도 나의 힘으로 가능하다면 최선의 방법으로 농사를 잘 짓고 돈도 벌고 싶습니다.

그러나 돈을 목적으로만 하는 농사는 사람과 자연환경을 생각하지 않는 폭력의 농사가 될 수 있습니다. 조금 적게 가지더라도 모든 생명에게 유익하고 덜 해로운 농사를 짓는다는 신념과 실천이 있어야 농부의 삶이 행복하고 즐겁습니다. 돈 버는 농사는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다는 속담처럼 농사의 경험을 축적하면서 현실을 올바로 보고 방법을 생각해도 늦지 않습니다.

 

글쓴이 소개: 실상사농장지기 짱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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