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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봄호(통권 194호)_지리산 정치학교

최고관리자
2023-07-20 16:16 368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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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참사와 정치

정치를 비추는 사회적 참사

 

이무열


말도 안 되게 비현실적이어서 너무나 지독한 현실이 청년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이라면 오히려 더 깊게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곳에서 정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미디어는 늘 그렇게 너나없이 가슴이 내려앉는 참사까지도 차이 없는 차이를 만들어 묘하게 진보와 보수, 좌와 우로 이분법적으로 정치를 경계 짓고 대립시킵니다. 이를 따라가며 여야 정치인들의 오가는 거친 말과 행동이 오목거울과 볼록거울이 되어 반성과 대안에 앞서 각자의 방식에 따라 참사의 정치를 연출합니다. 이제부터 다시 정쟁(政爭)의 장이 시작됩니다. 선거 때마다 어쩔 수 없이 차악에 투표하듯 어느 한 진영을 선택해 정쟁(政爭)의 틀에 갇히면 자기도 모르게 확증편향이 생겨 현실 정치 사이와 너머로 깊이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여기서 빠져나와야 사회적 참사를 제대로 이해하고 통찰할 수 있는 정치적 문해(文解)가 가능합니다.

 

일부러 근사한 말을 덧붙이지 않아도 공동체 안에서 정치가 하는 일은 분배, 균형, 조율, 지속, 안녕, 비전 등을 이루리라는 믿음입니다. “우리에게 믿음직한 정치가 있었다면 참사는 없었을 텐데.” 하는 돌이킬 수 없는 가정을 하면 더욱더 사회적 참사는 참사가 일어난 사회를 잘못 작동하고 있는 정치가 만든 결과라는 생각이 분명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잘못 작동되는 정치를 그대로 두고서는 사회적 참사는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서둘러 정치권력에게 책임과 대안을 물을 수밖에 없습니다. 책임과 대안을 내놓을 수 없다면 다른 정치가 필요합니다. 그간의 정치행태를 보면 물음보다는 지금여기 우리의 생명을 위해 시급하게 다른 정치를 준비하는 게 훨씬 낫다는 생각입니다.

 

3.2m, 길이 40m의 경사진 골목에서 어떻게 158명의 희생자가 나올 수 있었는지, 현장을 가보면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일부 공개된 정보를 보더라도 1029일 위정자들의 눈은 이태원에 없었습니다. 같은 시간 서울시내 경찰배치를 보면 시민의 안녕보다는 자신을 지켜주는 권력의 안녕이 먼저였습니다. 지역의 웬만한 시와 군 인구보다 많은 13만 명의 인파가 이태원에 몰릴 것이 예상되는 위험 상황과 현장에서 계속되는 신고에도 아무런 조치 없이 뒤늦게 공식적인 행사가 아니라는 변명은 참 구차하기 그지없습니다. 어떻게 공공조직이 시민의 안녕이라는 말에 공식과 비공식을 나눌 수 있는지. 정치의 자기부정입니다.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정치입니다.

 

2019315일 뉴질랜드 남섬의 최대도시 크라이스트처치 중심부 이슬람사원에서 총격사건이 일어나 50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벌어졌습니다. 38살의 여성 총리 저신다 아던Jacinda Arden은 참사가 발생하자마자 이슬람 여성들이 머리에 쓰는 쓰개 히잡을 두른 채 검정색 옷차림으로 무슬림 공동체를 찾았습니다. “여러분이 바로 우리다.”라는 말로 공동체를 위로하고 무슬림 이민과 이번 공격이 연관성 있다는 한 의원의 포퓰리즘적 평가에 부끄러운 일이라고 일소하며 온 나라가 슬픔에 빠졌다고 위로했습니다. 반면에 10.29할로윈참사가 있고 나서 대통령을 비롯해 국정과 안전을 책임지는 국무위원들과 경찰청장 누구에게서도 희생자 가족을 위로하고 참사 진상규명과 대책을 마련하는 등의 어떤 진정성 있는 태도를 볼 수 없었습니다. 변명과 애도를 통제하는 기이한 모습을 아무렇지 않게 연출했습니다. 정부를 책임지는 두 정치인의 모습이 참 많이 다르기도 합니다. 고 김근태 의원과 고 노회찬 의원에게는 미안합니다만 사실 우리 정치인들은 반성과 책임에 참 궁색합니다. 발뺌과 변명이 전부입니다. 앞으로 올 더 큰 위기를 방지하는 조직 위기관리의 상식이 된 먼저 모든 정보를 공개하고, 잘못을 인정하고, 대책을 마련하고, 실행하는 방식이 정치권에서는 유독 통하지 않습니다. 아직도 승자독식의 정치권력의 세계에서 잘못을 반성하고 책임지는 모습이 나약하고 상대방에게 지는 것이라는 적자생존(適者生存)’의 정치입니다.

 

정신과 행동에 지속적인 영향을 주는 사회적 참사로 인한 트라우마(Trauma)는 가족에게는 끝낼 수 없는 상처가 되고 사회에도 깊은 아픔으로 새겨집니다. 10년이 다돼가는 4.16세월호참사도 아직 가족과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치유되지 않은 깊은 상처로 남아있습니다. 사회적 참사의 상처가 충분하리만큼 계속 치유되지 않으면 오래도록 사회는 아픔과 두려움, 분노에 시달리게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10.29할로윈참사 이후 정부는 사망자와 희생자, 사고와 참사, 국가애도기간 지침과 리본의 문구 등으로 치유보다는 사회적 갈등을 부추기고 가족과 사회의 상처를 키워가고 있습니다. 갈등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정권이 사회적 갈등으로 정치권력을 유지하기 위함이 아니라면 158명의 희생 앞에서 있을 수 없는 일들을 벌이고 있습니다. ‘권력독점(權力獨占)’의 정치입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근본적인 정치는 모두를 적과 아군 이분법으로 나누고 자신들의 정치적 아군을 결집해 세력화하는 칼 슈미트Carl Schmitt적 정치와 다르게 이분법을 허물고 모두를 평등한 존재로 놓고 존재를 회복시켜주는 공생의 정치였습니다. 또 김지하 시인은 동양의 정치를 하늘의 뜻을 받아 그 뜻이 가진 법칙에 따라 인위적으로 세상을 조절해 가는 행위를 말하는 것으로 우주적인 생명운동의 법칙에 따라 그것을 인위적으로, 적극적·능동적으로 실천하는 포괄적 정치로 해석했습니다. 이렇게 근본적인 정치는 다른 생명들이 함께 살아가는 길을 열어주고 균형을 맞춰주는 일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억울한 죽임이 없는 공동체를 만드는 일이 정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실은 근본적인 정치를 거스르며 사회적 참사로 드러난 죽임 앞에 무기력한 거짓 정치가 정치뿐만이 아니라 공동체를 망가뜨리고 있습니다. 2014년 세월호참사와 2022년 할로윈참사로 그 속이 비춰진 정치는 각자도생(各自圖生)’, ‘승자독식(勝者獨食)’, ‘권력독점(權力獨占)’이 앞서는 정치입니다. 경쟁에서 살아나는 게 모두를 죽임으로 모는 지금의 기후재난과 사회재난을 만든 신자유시장 질서를 그대로 따르는 위험한 정치입니다.

 

우리는 10여 년 전 세월호라는 사회적 참사의 아픔을 겪고도 위험한 정치인들에게 여전히 정치를 위임하며 정치를 바꾸지 못했습니다. 아직도 관중석에 앉아서 손가락질하거나 한편으로 집값이나 자녀들의 성공을 기대하는 욕망을 투영하는 정치를 끝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시민들이 관중석에서 내려와 정치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지 않는다면 사회적 참사의 상처는 계속될 수 있습니다. 서둘러서 위험한 정치를 생명활동의 정치로 전화해야 합니다. 정치전환을 상상하는 책 시민권력은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가(Civilizing the State)에서 협동조합운동 연구실천가 존 레스타키스John Resttakis는 한 사회가 구성하는 정치 형태는 어떻게 권력이 축적되고, 배치되며, 무엇보다 누가 권력을 누리는지의 함수로 결정되고 독점된 정치권력은 자기정화(自己淨化)가 어려워 최대한 정치권력을 분산해야 한다고 합니다. 시민 사이에서 생성된 정치권력(정당)과 이렇게 창조된 정치권력과 적극적인 협치를 벌이는 시민권력(평의회, 시민의회 등)의 양가적(兩價的) 정치융합이 절실합니다.

 

이것을 수직, 집중, 하향, 전체정치를 특징으로 하는 근대정치와는 다르게 수평, 분산, 상향, 다양성을 특징으로 하는 문명전환을 위한 정치전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의 이야기를 빌려 쓰면, ‘지금이 바로 죽임의 정치에 합의와 동의를 멈추고 새로운 정치 창조를 시작할 때입니다.’

 

 

이무열

전환스튜디오 와월당 대표이자 문명전환하는 지리산정치학교 운영위원장. 달에 누워 구름을 보는 삶을 꿈꾼다. 세상의 모든 일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생겨나며, 생명이 지닌 힘으로 세상이 호혜적인 관계로 연결되기를 바라면서 일하고 있다. 사단법인 밝은마을_생명사상연구소, 생태적지혜연구소와 함께 개인의 욕망 , 트렌드, 사회적 경제, 생태철학, 생명운동 등을 연구하며 브랜드를 만들어 가고 있다.

요사이는 근대산업문명이 일으킨 기후재난 시대에 지역이 답이다라는 생각으로 지역회복을 위한 연구와 실천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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