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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여름가을호(통권 195호)_식약동원_쌀 한 톨의 무게, 그리고 쌀로요 ― 낙지, 정어리

인드라망관리자
2023-11-02 10:49 97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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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한 톨의 무게, 그리고 쌀로요



2023년 6월 24일, 숨단지 발효연구소의 개소식이 있었다. 인드라망 시범 사업으로 2년간 해보기로 결의한 뒤, 정어리 발효연구소에서 숨단지 발효연구소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 이유인즉슨, 정어리를 발효해서 젓갈을 만드는 곳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의 의견 수렴과 좋은 아이디어를 모아 ‘숨을 내쉬고, 들이쉬고, 생명을 살리는 단지, 숨단지’로의 한 걸음을 걷게 되었다. 개소식 당일, 나는 숨단지 발효연구소의 사업계획을 말씀드렸다. 1단계는 초란식초와 쌀로요, 2단계는 한국형 종균의 표준화, 3단계는 스페이스X의 우주선에 한국형 종균을 실어 우주로! 개소식에 참석한 많은 분들이 환호해주시고, 기쁜 마음으로 박수를 쳐주셨다. 3단계가 조금은 머얼리~ 보이는 계획 같지만, 1단계부터 차근차근 하다 보면 언젠가는 길이 열리지 않을까 한다. 

낙지와 밤비의 개소식 축하공연이 있었다. 그 노래를 듣던 많은 이들 중에, 눈물을 푹 쏟아내는 이 있었으니…. 터진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던 정어리! 왜 울었을까?

쌀 한톨의 무게는…/생명의 무게/평화의 무게/농부의 무게/세월의 무게/우주의 무게 (쌀 한톨의 무게, 홍순관 노래 가사에서) <사진_쌀한톨>8d916435c0d73fa20662ccc221c4dc27_1698907809_5368.jpg

공동체살이 4년 차인 정어리는, 그동안 실상사 농장의 농산물들과 실상사 주변 자생식물들을 어떻게 많은 이들에게 음식으로 널리 전파할까를 고민하며 지내왔다. 그러던 와중에, 실상사 농장 쌀이 가진 생명의 정기, 아픈 사람들만 안다는 ‘먹으면 기운 나는 쌀의 힘!’에 대해 고민했다. 이 귀한 쌀을 어떻게 사람들에게 맛있는 음식으로 전할까 말이다. 요즘은 유당불내증(우유에 들어 있는 유당(락토스)을 소화하지 못하는 대사 질환)도 많고, ‘비건’도 많은 시대이니, 이 시대에 맞게 쌀밥이 아닌 새로운 음식을 선보이고 싶었다. 그런 마음을 품은 지, 3년째 되는 작년 이맘때쯤, ‘그래! 쌀 발효 음료를 만들어볼까?’ 하면서 하나둘 테스트하기 시작했다. 숨단지 주방이 있기 전이니, 열악한 화림원 주방에서 이것저것 실험을 했다. 그 와중에 화림원 물도 끊기고, 동파되는 등 여러 상황(나에게는 아주 속 터지는 상황의 연속이었다.ㅋ)에서도 그저 ‘꿋꿋하게 하자.’ 하며 수개월 개발에 매진했다. ‘그래! 하면 된다! Impossible is nothing!’ 어느 광고에 나오는 문구지만, 내 마음에 항상 간직하고 있는 말이기도 하다. 그렇게 1년여, 드디어 7월 말. ‘쌀로요(쌀 발효 음료)’가 출시되었다. <사진_쌀로요>8d916435c0d73fa20662ccc221c4dc27_1698907825_5673.jpg 

“이거 뭘로 만들었어요?”

‘’쌀로요!”

내가 쌀밥에 관심을 기울인 까닭이 있었다. 사실은 나는 ‘밥순이’이다. 어릴 때부터 주로, 쌀밥과 김치가 나의 힐링 음식이고, 배고픈 나의 마음도 채워주는 따듯한 음식이었다. 내 기억에는 없지만, 할머니 말씀으로는 6살 어린 아이가 밤에 냉장고 문을 열고, 물김치를 꺼내 밥을 말아 먹었다는 이야기를 듣곤 했다. 쌀을 싫어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아픈 사람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곡물이 쌀이라는 걸 오랜 투병 기간에 나는 알게 되었다. 밥순이이기도 한 나에게, 아팠던 긴 시간 나에게 쌀은 그렇게 소중한 존재였다. 그 연유로 실상사 농장의 쌀은 나의 생명을 살려주는 음식이자, 다른 이들에게 생명의 정기가 살아 숨쉬는 음식이 되면 좋겠다는 마음을 오랜 기간 간직하게 되었다. 

낙지와 정어리는 실상사 화림원(인드라망생명공동체 재가활동가 숙소)에서 도반으로 지내면서 티격태격하며 음식과 약에 대한 토론을 많이 하곤 한다. 한의사인 낙지는 전문지식으로, 몸이 많이 아팠던 정어리는 경험으로! 그래도, 전문가는 언제나 공동체 주치의 낙지다! 


공동체 주치의 낙지의 말을 빌려보자면, 

쌀은 독이 없는 곡물이다. 쌀은 두 가지 장점을 지닌 대표 식물이라고 한다. 첫째, 밀과 보리가 약간 차다면 쌀은 차고 뜨거움에 치우치지 않고 중앙에 위치해 있다(맵쌀은 약간 따듯하고, 찹쌀은 약간 차다). 쌀은 소화기를 따듯하고 평온하게 하며 살을 찌운다고 한다. 몸의 기운을 보태주고 가슴 답답함과 설사 이질을 치료하는 보물 같은 곡물이라 한다. 그래서 주식으로 자리 잡지 않았을까 한다. 둘째, 한의학에서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정(精), 기(氣), 신(神) 중에, 에너지에 해당하는 한자인 精氣에 모두 쌀 米자가 들어가는 걸로 봐서 오래전부터 쌀은 사람들의 에너지 공급원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옛 조상들은 이미 쌀 속에 깃들어 있는 우주를 잘 알았을지 모르겠단 생각이 드는 대목이다. 또, 본초강목에서는 늦은 백미가 좋고, 일찍 거둔 쌀은 그다음 간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늦게 추수한 쌀이 좋다는 의미다.


치료용으로 쌀을 쓸 때도 위의 특징들을 이용한다. 우선 너무 찬 음식을 먹었건 너무 맵고 자극적인 것을 먹었건, 배가 아프고 설사가 나면 쌀죽이나 미음으로 속을 달랜다. ‘이질 곽란’(곽란은 갑자기 아주 심하게 토하고 설사하며 심복부가 꼬이듯 아픈 질환을 광범위하게 말하고, 이질은 배가 아프고 대변을 자주 보되 양이 적고, 속이 땅기며 뒤가 무겁고, 끈적끈적하거나 심지어 피고름 같은 대변을 본다.) 등을 앓을 때 다른 약초들과 함께 쌀을 넣고 달이기도 한다. 오랜 병이나 과로로 기력이 떨어진 사람에게도 쌀죽이나 미음으로 기운을 회복하기도 하고, 고기나 인삼 등을 함께 끓여 먹인다. 쌀의 모나지 않은 성질 덕분에 지친 몸이 편안하게 흡수할 수 있고, 기운도 보충해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낙지는 이런 결론을 내린다.


“멋도 없고 재미도 없는 사람이지만 진국인 사람이 있다. 쌀이 그런 음식이다.”

 

낙지는 올해 ‘목금토 공방’에서 ‘실상사 농장’으로 소임을 이동했다. 농사에 ‘농’ 자도 잘 모른다는데, 어쩌다 25마지기 논농사 책임을 맡고 있다. 당연 농장지기 짱짱의 세심한 지도를 받을 테지만, 그래도 대단한 낙지! 초보 농부의 서툰 손길에도 벼들이 알아서 포기 수가 늘고, 굵어지고 키가 크고 짙어지는 걸 보며 신기하다고 한다.

실상사 농장 쌀은 2023년 유기농 인증을 받았다. 그러나 오래전부터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지어왔고, 20여 년이 흘렀다. 가족들과 지인들에게 해마다 수확한 작물을 보내는데, 그중 쌀이 가장 반응이 좋다. 실상사 농장은 마을에서 매년 꼴찌로 모내기와 벼베기를 한다. 본초강목에 나오는 이야기대로 그 이유가 밥맛이 좋은 원인 중 하나가 아닐까 한다. 


4월 초, 논을 갈고 벼농사 준비를 한다. 4월 중순에는 공동체 울력으로 볍씨를 모판에 심고, 모판을 논에 깔아 모를 기른다. 논둑을 베고, 유기농 퇴비를 뿌리고, 써레질을 하며 모내기 준비도 한다. 파종 50일쯤 지난 5월 31일 모내기를 했다. 실상사 농장은 전통적으로 매년 손모내기를 한다(기계로 하는 논도 있긴 하다). 모내기를 한 뒤에는 우렁이를 논에 넣어 풀을 잡고, 매일 논을 오가며 물 높이를 확인하여 논물을 조절한다. 풀이 많이 나는 숲 논은 공동체 울력 시간에 사람이 직접 김을 매준다. 무더운 여름을 지나, 추석이 지난 늦은 가을에 추수를 한다. <사진 1>8d916435c0d73fa20662ccc221c4dc27_1698907853_4267.jpg


화학 비료와 농약과 제초제를 쓰지 않는 논에는 개구리, 미꾸라지와 투입한 우렁이들, 그리고 이 아이들을 잡아먹고 사는 뱀, 백로, 왜가리들과 오리들이 온다. 풀이 길게 자란 논둑에는 고라니 새끼들이 쉬고 있다가 도망가기도 한다. 자라나는 벼들을 보는 것과 함께 낙지는 동물, 곤충, 벌레 등 다른 생명들과 인사하며 매일 논을 살피는 게 즐거움이다. 때로는 오리와 대화하는 낙지를 논둑에서 확인할 수 있다. 궁금한 분들은 실상사 템플스테이를 권한다. 이런 논에서 나는 쌀. 양심에 부끄럽지 않으니 누구에게도 떳떳하게 권할 수 있다.


이렇게 귀하게 자라고 수확한 실상사 농장 쌀로 만든 것이 쌀로요(쌀 발효 음료)다. 이제는 시대가 많이 변해서 쌀보다 밀가루, 밥보다 빵을 주식으로 하는 한국인들이 늘었고, 쌀의 수요가 아주 많이 줄었다고 한다. 하지만, 밥순이인 나는 쌀이 얼마나 소중한지, 쌀이 주는 생명력이 사람에게 얼마나 필요한지 누구보다 잘 안다. 쌀을 발효시키고 당화하는 과정에서 설탕 없이도 쌀은 아주 달달하게 다시 태어난다. 쌀이 발효되며 소화기에 도움이 되는 아밀라아제, 리파아제, 프로테아제라는 소화효소가 발현된다. 쌀로요를 장복하면 소화 기능 개선, 배변 활동이 원활해짐을 느낄 수 있다. 유기농 찹쌀도 들어가 포만감도 채워준다. 아침 식사로도 좋고, 간식으로도 좋다. 아기들은 이유식으로, 어린아이들과 어른들에게는 소화 기능을 튼튼하게 해주는 좋은 음식이다. <사진-2>8d916435c0d73fa20662ccc221c4dc27_1698907866_9453.jpg


쌀로요가 태어나기까지, 여러 시행착오도 있었다. 공학적 기반으로 한 여러 쌀로요의 제작 공정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처음 만들어진 쌀로요의 맛은 ‘엿 맛’이었다. 말 그대로 옛날 엿 맛이 난다고들 했다. 화림원 물이 동파되었을 땐, 생수를 사서 만들기도 했다. 산에서 내려오는 화림원의 식수가 끊기고, 지하수 공사를 한 뒤에는 지하수에서 올라오는 돌가루 때문에 애를 먹었다. 지하수가 나온 뒤에는 물과 쌀에서 나오는 비린내로 다시 애를 먹기도 했다. 혼자서 속이 타는 몇 달간의 긴 시간이었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싶었다. 그 과정에서 나 혼자 쌀로요의 맛을 평가하거나 알아내지 않았다. 내가 객관적으로 완벽하게 알아내지 못할 수 있기에 실상사 스님들, 아이들, 직장맘, 공동체 식구들 등 많은 이들에게 묻고 답하고 고민했다. 사람들이 말하는 답을 다시 거꾸로 생각해보고, 꿈에서도 쌀로요를 만들어보는 수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몇 달을 보내면서, 때로는 실망스럽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했다. 정밀하게 조절하고 싶은데 화림원 주방이 열악했다. 아니다. 장비와 환경 탓하는 거 아니다. 다시 또 만들고, 다시 묻고, 다시 또 만들고. 그렇게 수많은 밤과 낮을 보내며 스스로에게 물었고, 다른 이들의 말을 경청했다. ‘내가 개발했으니, 내가 최고다.’라는 마음만 버리면 수많은 개선점을 쉽게 얻을 수 있단 사실도 배웠다. 경청이 답이다! _()_


쌀로요가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게 된 건, 그 자체로 인드라망이다. 공동체 살이 4년 차 정어리는 몸이 많이 아픈 시절이 길었는데, 언제나 배려와 지지를 보내준 공동체 식구들과 신도님들이 계셨고, 실상사 농장지기들의 열정과 노력, 공동체 울력을 통해 키운 소중한 쌀, 지리산이 뿜어내주는 맑은 공기, 바람, 물, 자연이 있었다. 숨단지 발효연구소가 오픈할 수 있게 공동체의 후원과 지인들의 후원이 있었고, 공사를 맡아주신 마을 분들, 후원을 통해 연결된 주방업체 KKD의 프로페셔널 뒤에 숨겨진 고마운 마음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지난 10년 동안 아픈 손가락 같은 큰딸 때문에 마음고생했을 부모님도 계셨다. 수많은 구슬들이 연결되어 쌀로요가 탄생했고, 곧 세상 밖으로 나가 많은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음식으로 태어나면 좋겠다. 고맙습니다. _()_


그래서, 숨단지 발효연구소 개소식 축하공연 노래, ‘쌀 한 톨의 무게’를 듣다 펑펑 울고야 말았다! 아무도 울지 않았는데, 정어리 혼자 펑펑펑! 


쌀 한 톨의 무게, 생명의 무게, 우주의 무게가 깃들어 있다. 그리고 쌀로요에 생명의 정기를 담아 세상으로 나누고 싶다. 나무 석가모니불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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