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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여름가을호(통권 195호)_마음공부_나의 불교 수행론 - 하안거입재 특별수행강좌 ― 세연정

인드라망관리자
2023-11-02 10:50 10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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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불교 수행론 

-하안거입재 특별수행강좌-


법문: 실상사 회주 도법스님


오늘은 ‘나의 불교 수행론’이라는 주제로 제 이름을 걸고 수행론을 이야기하는 자리입니다. 무슨 기대가 있어 이렇게 많은 분들이 오셨을까요? 이렇게 함께해 주셔서 감사한 마음입니다.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나는 매우 평범한 사람이고, 매우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정말 특별한 점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사람들이 더러 내게 ‘왜 이렇게 사서 고생하냐?’고 말합니다. 그러나 나는 고생스럽게 산 적이 없습니다. 다만 사람들 눈에 그렇게 비치는 것 같아요. 사람들 눈에는 고생스럽게 보이는데 왜 나는 괜찮은가? 스스로 물었을 때 그 답은, ‘그렇게 사는 것이 인간적으로 괜찮다. 그렇게 사는 것이 인간적으로 바람직하다. 그렇게 사는 것이 너에게도 좋고, 나에게도 좋고, 우리 모두에게도 좋겠다.’입니다. 그렇기에 나는 그 삶을 선택한 것입니다. 내 스스로 양심적으로, 인간적으로, 인격적으로 부끄럽지 않게, 미안하지 않게 살기 위해서는 이렇게 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것을 누군가는 특별하게 보기도 하고, 사서 고생한다고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누가 어떻게 보는 것과 상관없이 저 스스로는 나에게, 그리고 너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려고 했습니다. 불교 수행도 그런 관점에서 이야기되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에서 다듬어 왔습니다.

나의 최고의 스승은 나 자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최고의 공부는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부처님이 좋은 스승이기도 하고 그분의 도움을 받기도 하죠. 그렇지만 스스로 묻고 답을 찾아가는 자세가 투철할 때 부처님도 도움이 됩니다. 스스로 묻고 탐구해가는 과정이 투철할 때 비로소 어른, 혹은 스승의 말씀도 도움이 되고 힘이 된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나에게 일차적인 스승은 나 자신이다.’ 이것도 매우 상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틀리지 않구나, 괜찮구나 하고 확신하게 했던 내용이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 중에 ‘나의 가르침은 함께 대화를 나눌 경우, 바로 이해된다. 경험된다. 바로 실현된다. 증명된다. 이것이 나의 가르침이고 나의 진리다.’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나는 이것이 상식 속에 진정한 심오함이 있다는 뜻이라고 이해됩니다. 평범함은 단순한 평범함이 아니다, 상식이 삶으로 심화될 때 진정한 심오함이 된다고 봅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불교 수행론

불교를 공부하면서 첫 번째는 나 자신을 위해서, 두 번째는 공부와 수행을 통해 삶을 잘 살아 보겠다는 보통 사람들에게 도움 되는 불교 수행론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불교 수행론을 정리해보려고 했지만 여러 이유로 해서 ‘이것이 나의 불교 수행론이야.’ 하고 이야기한 적은 없습니다. 

일단 불교 공부와 수행을 해보려 하면 양적으로 대단히 많습니다. 2600여 년 불교 역사 속에서 어마어마하게 많은 이야기들이 만들어졌습니다. 그것을 ‘팔만사천법문’이라고 말합니다. 마음먹고 공부와 수행을 해보려고 하면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보통 사람들에게 ‘불교 공부와 수행은 좋은 거야.’ 하고 권하는 모습이 합리적으로 상식적으로 안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서 ‘이 정도는 할 수 있는 거야.’하고 권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일단 나에게 필요했고, 다음으로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들에게 필요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나의 불교 수행론’을 만들어보려고 하면서 살아왔습니다. 

지금에 와서 뼈대라도 갖추어서 이야기해보자고 한 까닭은 이제 내가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제 더는 누구 눈치 보지 말고 내 배짱대로 정리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죽기 전에 이거 하나라도 정리하고 가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불교 역사를 관통하는 불교 수행의 핵심

2600여 년 불교 역사 전체를 보았을 때 초기불교, 부파불교, 대승불교(공사상, 유식사상), 선불교, 현대불교로 크게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이 모든 불교 사상과 정신을 종합, 통합, 압축해서 ‘불교는 이런 거야.’, ‘불교 수행은 이렇게 하는 거야.’ 이렇게 이야기될 수 있도록 ‘나의 불교 수행론’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전문가들이 봤을 때 ‘부처님이 뜻한 공부와 수행으로서 사람들에게 권할 만하다, 유익하다’고 할 수 있게 말이죠. 

그런 과정에서 ‘이렇게 불교 수행하면 제대로 돼.’ 하는 내용을 찾기 위해 나름대로 초기불교자료를 뒤적뒤적해 왔습니다. 초기불교에서 불교 수행의 정신을 한마디로 표현한 말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 

어떤 분이 부처님께 가서 물었습니다. ‘불교 수행을 하는 사람이나 하지 않는 사람이나 별로 다를 바가 없어 보입니다. 그 차이가 뭡니까?’ 하고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길, ‘불교 공부와 수행을 한 사람은 첫 번째 화살은 맞지만 두 번째 화살은 맞지 않는다. 반면 불교 공부와 수행을 하지 않은 사람은 첫 번째 화살도 맞고 두 번째 화살도 맞고 더 나아가 세 번째, 네 번째 화살도 맞는다. 불교 수행이 제 2의 화살을 맞지 않도록 하는 삶을 살게 한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제2의 화살을 맞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다면 그것이 최고의 삶이라고 봅니다. 

대승불교에 속하는 [금강경]에는 ‘무주상행(無住相行)’ 또는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以生其心)’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 구절이 [금강경]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이죠. 이 구절과 ‘제2의 화살을 맞지 않는다’는 말은 관통됩니다. ‘무주상행’과 ‘응무소주 이생기심’은 어디에도 머물지 말고 새로운 마음을 일으키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제일 많이 머물러 있는 데가 어디일까요? 마음은 주로 과거나 미래에 머뭅니다. 그러나 거기에 머물지 말라는 겁니다. 새로운 마음을 일으키면 우리는 즉각 새로운 마음을 일으키는 사람이 됩니다. 행위하는 대로 삶이 창조되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 더 선한 마음, 더 겸손한 마음, 더 진실한 마음, 더 너그러운 마음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그 마음으로 말도 하고 행동도 해야 합니다. 좋은 마음을 일으키는 사람, 좋은 말을 하는 사람, 좋은 행동을 하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지 않겠습니까? 너무나 단순명료하지 않습니까? 불교는 알 수 없는 것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다음으로 간화선을 주창했던 대혜종고선사가 정리한 수행론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종고선사는 수행을 ‘생처방교숙 숙처방교생(生處放敎熟 熟處放敎生)’이라고 정리했습니다. ‘생소한 것은 익숙하게 만들고 익숙한 것은 생소하게 만드는 것이 불교 수행이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염불 수행, 절 수행, 위빠사나, 다라니 수행, 진언 수행 등 어떤 종류이든 수행을 해보면 일차적으로 수행의 위신력으로 나타나는 것이 있습니다. 첫 번째로 나타나는 수행의 공덕은 번뇌망상이 있음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염불을 하거나 화두를 들어보면 어떻습니까? 번뇌망상이 안 일어나던가요? 평소에는 번뇌망상이 뭔지도 모르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내가 마음먹고 뭔가를 집중해서 해보려 하면 온갖 번뇌망상이 들끓습니다. 스스로도 잘 모르고 있다가 수행을 해보면 알게 됩니다. ‘아, 내가 번뇌망상 덩어리구나. 번뇌망상에 압도되어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 깨달음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수행을 하지 않으면 모릅니다. 이렇게 첫 번째 수행의 위신력이자 공덕은 번뇌망상에 지배받고 있음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요? 평생 번뇌망상 덩어리로 살다가 죽는 겁니다. 일단 이것이 문제인 줄을 알아야 해결이 가능해집니다. 

대혜종고선사가 ‘익숙한 것은 생소하게 만들고 생소한 것은 익숙하게 만드는 것’이 수행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것이 무엇입니까? 번뇌망상입니다. 번뇌망상은 작심하고 일으킵니까, 아니면 저절로 일어납니까? 나도 모르게 일어나잖아요? 번뇌망상 일어나는 것이 생소하게 되도록 하는 것이 수행이라고 하신 겁니다. 그리고 화두 들기, 염불이나 진언을 외우기 어떤가요? 익숙하지가 않지요? 이것을 익숙하게 만드는 것이 수행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습관화된 것은 생소하게 만들고 새롭게 계발할 부분은 익숙하게 만드는 것이 불교 수행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실상사에서는 ‘미혹문명을 넘어 깨달음의 문명으로’라는 주제로 만일결사를 하고 있습니다. ‘미혹문명’이 우리에겐 익숙한 것입니다. 미혹문명으로 사는 한 천지개벽을 백 번 해도 못 살겠다는 비명소리가 끝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내려놓고 깨달음의 문명으로 전환하고자 만일결사를 하는 것입니다. ‘깨달음의 문명’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잘 모르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낯섭니다. 깨달음의 문명을 익숙하게 하는 것이 불교 수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내용을 평소에 많이 사용하던 말로 바꾸어 보면 ‘사람이 죄 많은 중생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사람이 부처더라’라고 하는 말입니다. 

‘나는 죄 많은 중생이다’라고 하는 사고방식이 미혹문명의 내용입니다. 나는 ‘죄 많은 중생’이라고 하는 사고방식이 뼛속 깊이 뿌리 박혀 있습니다. 그리고 계속 죄의식에 빠져들어 가고 있습니다. 이것을 생소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반대로 ‘내가 마음먹고 행위하기만 하면 즉각 창조되는 것이 인간이야. 인간은 본래부처야.’ 이렇게 본인이 본래부처라는 내용을 계속 익숙하게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것을 불교 수행이라고 정리하고 있습니다. 


불교 공부와 수행은 한 마디로 이것: 반야바라밀초기불교, 대승불교, 선불교를 관통해서 이 정신이 오늘날도 유효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미래에도 유효하다고 봅니다. 과거, 현재, 미래, 그리고 나, 너, 우리 모두에게 유효한 것, 공통성과 보편성을 가지고 있는 것을 우리는 ‘진리’라고 합니다. 

앞서 설명한 이런 불교 사유 방식을 근간으로 해서 불교 공부와 수행의 뜻을 아주 압축적으로 잘 표현한 말이 있습니다. 이것을 한마디로 뭐라고 표현하고 있을까요? ‘반야바라밀’입니다. ‘반야’는 깨닫는다는 의미를 나타내고, ‘바라밀’은 깨달은 내용을 삶으로 실천한다는 말입니다. 알아야 할 것을 제대로 안 것을 ‘반야’라고 하고, 실천해야 할 것을 온전히 실천하는 것은 ‘바라밀’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반야바라밀’은 ‘안 것을 실천한다’는 뜻이 됩니다. 

부처님께서 뜻한 불교 공부와 수행을 한마디로 가장 잘 압축한 표현이 ‘반야바라밀’이라고 봅니다. 이 한마디에 모든 불교가 다 녹아들어 있습니다. ‘나의 불교 수행론’도 이 관점에 맞추어서 완성해 가야 되겠다고 말씀을 드려 봅니다. 


자기소개: 세연정. 실상사 종무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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