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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여름가을호(통권 195호)_지리산연찬_이미 변화된 대한민국에 맞게 정치가 바뀌어야 합니다 ― 조성주

인드라망관리자
2023-11-02 10:56 146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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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변화된 대한민국에 맞게 정치가 바뀌어야 합니다

조성주 정치유니온 <세 번째 권력> 공동운영위원장


정치가 바뀌어야 대한민국이 바뀐다? 


아닙니다. 대한민국은 이미 바뀌었는데 정치가 바뀌지 않아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 연찬의 주제인 ‘정치전환’은 변화된 대한민국의 현실에 맞게 정치의 역할을 바꾸고 정치가 해야 하는 시대적 과제를 재정립하는 의미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있는 그대로의 대한민국을 인정하고 그 위에서 변화를 꾀해야 합니다. 대한민국은 이미 글로벌 차원에서도 시차가 거의 없는 사회가 되어 있습니다. 코로나19 펜데믹과 디지털 산업혁명이 이를 방증하고 있습니다. 이는 곧 미완의 민주화와 산업화를 달성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 상대방을 척결해야 한다는 식의 1987년 민주화 이후 만들어진 세계관의 종료를 상징적으로 의미합니다. 

 대한민국 시민은 이제 거악으로 규정한 상대 진영을 척결하는 것만이 시대적 사명이라는 1987년 세계관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정치 여론조사에서 꾸준히 늘고 있는 ‘지지 정당 없음’ 응답은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무당층이 아니라, 양당제 자체를 비토하는 시민의 의사표시입니다. 따라서 지금 대한민국에는 2024년 총선을 겨냥한 ‘기획 정당’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세계관을 가진 ‘좋은 정당’이 필요합니다. ‘새로운’ 정당이 아니라, ‘새로운 종류’의 정당이 필요합니다.


정치전환을 추구하는 우리는 누구인가?


전환은 달성해야 하는 목표보다 먼저 우리 스스로에 대한 성찰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정치전환을 위한 가장 중요한 성찰은 2016년 촛불이, 이후 정치의 실패로 귀결되어버렸다는 우리의 공통 경험일 것입니다. 촛불로 인해 참여에 대한 열정은 높았고, 새로운 사회의 도래와 급진적 개혁에 대한 기대도 컸지만, 이러한 운동적 열정이 좋은 정당이나 사려 깊은 정치적 규칙에 의해 통제되지 못할 때 정치는 얼마든지 타락할 수 있음을 우리는 직접 목격하고 있습니다. 우리 역시 그 타락에서 주연 또는 조연, 그리고 열렬한 응원자는 아니었는지 성찰해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의 정치, 사회의 위기는 사실 민주주의가 만들어낸 민주주의의 위기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지금 정치의 전환을 추구하는 우리는 ‘촛불을 혁명으로 부를 수 없게 된 사람들’이기도 하며 87년 세계관에 따라 거악(巨惡)과 싸우는 ‘투사’가 아니라 ‘이견을 인정하고 토론해 가는 민주주의자’여야 하며 오늘날 센 목소리들의 격렬한 투쟁 속에서 소외된 ‘타인의 고통’에는 민감하고 ‘문제 해결의 방법을 찾는 데 심사숙고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나아가 탈진실의 시대에 ‘지성을 신뢰하고, 이견을 존중하며, 타협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치주의자’여야 합니다. 


정치전환은 ‘혁명’이나 ‘국가대개조’와는 달라야 합니다!


이제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시대적 과제들은 거악을 척결해서 새로운 세상을 열어낸다거나 완전히 다른 대한민국을 만들어내기 위해 사회대개혁을 한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어야 합니다. 이는 지난 시대의 ‘국가개조론’의 연장입니다. 

 문재인 정부와 윤석열 정부의 통치가 실패했고 실패하고 있는 이유는 두 정권 모두 국가개조론이라는 反리버럴한 정치관에 서있기 때문입니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이 혁명이며 혁명은 구체제의 척결일 수밖에 없으므로 적폐청산을 시도하고, 윤석열 정부의 4대 개혁은 사실상 개혁 대상에 대한 수사나 사법처리(노동개혁은 노조 수사, 교육개혁은 일타강사 세무조사 etc)로 나타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세력이 망친 나라를 완전히 바꾸겠다는 국정운영 방식은 한국 대통령제의 영구한 특징이 되어가고 있으며 정권이 바뀔 때마다 사회를 혼란으로 몰아넣을 뿐입니다.

 하지만 최초의 유색인종 대통령인 미국의 오바마 전 대통령은 임기 8년간 의료보험 개혁 정도를 해냈으며, 16년의 집권 기간에 독일 메르켈은 금융위기를 안정적으로 넘기고, 에너지 정책을 재수립하는 데 임기를 다 사용했을 뿐입니다. 주기적인 선거를 통해 정부가 교체되는 민주주의 정치 질서 하에서 정책은 제한적이고, 만일 임기를 넘어 실현되는 정책이라면 경쟁 정당의 동의가 필수이기에, 심의는 인내와 설득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진짜 민주주의 정부는 너무 방대하거나, 너무 급진적인 정책 목표를 제시하지 않습니다. 정책은 겸손하고 제한적이어야 하며, 모든 것을 다 할 수 없기에 정치적 우선순위가 생기는 것이며 이 정치적 우선순위를 사려깊게 판단하는 것이 정당과 정치가의 핵심 역할이어야 합니다. 국가개조론은 사실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것이며, 정치적 우선순위 작성은 책임정당의 핵심 덕목입니다. 지금 필요한 정치는 그래서 ‘책임정치’여야 합니다.

 이러한 책임정치를 통한 변화는 급격하지만 오래가지 않는 기존의 정치가 아니라, 오래가는 지속가능하고 튼튼한 변화를 추구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가 옳다!”가 아니라, “우리의 방법이 더 좋다!”로 상대 정당과 대한민국 시민을 설득해야 합니다.


정치전환은 결국 중도인가?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 공동체의 균열은 진보·보수의 단선적 구분으로는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해졌습니다. 따라서 그 가운데를 임의로 상정한 중도는 성립할 수 없게 됐습니다. 중도가 아닌 중원에서의 정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저희가 말씀드리는 중원은 정치경쟁의 ‘주제’라는 측면으로 보자면 지엽적이거나 단일이슈 중심(가령 검찰개혁, 검사탄핵 등) 대신, 사회 구성원들이 폭넓은 이해관계를 갖는 사회·경제적 이슈(노동시장, 복지국가, 연금, 기후위기 등)들을 해결하는 진지한 비전과 정책들의 경쟁 공간을 의미합니다.

 중원은 정치경쟁의 ‘규칙’이라는 측면에서 자유주의의 다원성 정치 규칙을 준수한다고 할 수 있는데, 여기에서 각자의 진정성은 의심받지 않으며, 영구적이거나 독선적인 혹은 정답풀이류의 해결책은 존재하지 않고, 각자 대안들의 한계를 인정하는 가운데 타협적 해결책이 모색되는 공간입니다. 정치가 발견되고 작동하는 본령에 가까운 공간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중원의 공간은 현재 상대를 절멸시키기 위해서 거의 모든 정치적 시도들을 서로 비토하는 비토크라시(vetocracy)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정치가 양극화된 상황에서 입헌적 질서(견제와 균형)를 유지하기 위한 고안된 장치들로 인해 미국 정치에 비토크라시만이 남았다고 비판함. (주로 상원의 필리버스터 형태 등으로 공화당은 바이든 정부의 정책을 무조건 반대함) 

가 아니라 디토크라시(dittocracy) ditto 즉 동의에 의한 통치를 할 수 있어야 하며 이는 상대를 제압하는 것이 아닌 설득하는 방식으로 작동해야 함

가 작동하는 공간이어야 합니다. 이는 ‘중요한’ 문제들을 동의의 방식으로 다루는 통치방식, 동의를 형성해 가기 위한 정치적 과정이 중시되는 정치를 말하기도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규율잡힌 정당(리더들의 정당 간 협상이 정당 내부에서 불신임받지 않아야 하며), 주요 정당 사이에서 의제의 수렴화(특정 이슈나 극단 이슈 대신 폭넓은 이해관계를 갖는 이슈를 다루기로 함), 그리고 정치 과정에서 시민사회와 충분한 정보의 제공과 편견 없는 토론이 가능해야 합니다.


새로운 정당은 어떤 정당이어야 하는가?


변화된 대한민국을 인정하고 극단적 이념과 상대에 대한 거부의 정치가 아니라 합리적 해결책을 모색하고 타협해가기 위해서 지금 한국 정치에는 새로운 종류의 정당이 필요합니다. 이 새로운 정당은 상대를 절멸하기 위해 반정립의 정체성을 가지는 정당이 아니며 우리 가치와 이념을 강요하는 정당이 아닙니다. 

 정치전환을 위해 만들어져야 하는 새로운 정당은 일종의 ‘개방적인 협업 툴(Tool)’로서, 누구나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 참여할 수 있도록 개방적이며 오늘날 우리 공동체에 닥친 문제 해결에 집중하는 정당이어야 합니다. 당원 간 자유로운 토론을 통해 발견해 낸 솔루션을 정책에 반영하는 민주적인 정당이며 '우리가 남이가'가 아니라 '우리가 남이더라도 상관없는' 다원성에 기초한 유연한 정당이어야 합니다. '우리 가치와 이념'이 아니라 '우리의 해결 방법'을 사회에 던지는 정당이어야 합니다. 

정당은 하나의 세계관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새로운 정당은 새로운 세계관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 정치의 가장 큰 장점은 이견을 다투는 정치 과정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배우고 성장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새로운 정당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기본원리를 가지고 운영하는 정당에서 다양한 의제들에 대한 교육 및 토론을 통해 당원들이 성장해 나갈 수 있는 정당이어야 합니다. 

 새로운 정당은 현재 양당 내부의 세고 강한 극단의 지지자들 목소리만이 아니라 조용하고 평범한 시민들의 목소리를 전달해주는 스피커 역할을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정당은 평범한 시민들이 ‘무엇’으로 낙인찍힐까 두려워하지 않고 대화와 토론이 가능한 안전하고 평화로운 공론장 역할을 해야 합니다. 


새로운 정당이 다루어야 하는 공동체의 과제는 무엇인가?


먼저 공동체의 문제 해결을 위해 다수의 횡포가 작동하지 않도록 하는 정치개혁이 필요합니다. 다양성을 존중하고 대화와 타협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가는 정치를 확립해야 합니다. 다당제 연합정치가 가능한 선거제도 및 정치 개혁 그리고 의회를 중심으로 다양한 의제들이 논의되고 조율될 수 있도록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의 역할 재정립 등이 필요합니다. 특히 입법부인 의회가 시민들의 다양한 의제들이 책임지고 논의될 수 있도록 행정부와의 역학관계에서 더 강화될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위해 양당 모두가 해온 청와대(대통령실) 중심의 정치가 아닌 의회가 중심이 되는 정치로 전환되어야 합니다. 대통령실의 규모와 권한을 줄이고 총리와 장관들을 통해 정책을 집행할 수 있도록 하며 의회에서 예산과 입법, 감사에 대한 권한을 더 많이 사용할 수 있도록 바꾸어야 합니다.

 기후위기가 단순히 날씨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과 무역 등 경제 전반에 완전한 변화를 요청하는 문제가 되었습니다.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저출생, 고령화 문제와 이제는 받아들여야 할 장기 저성장 체제로의 전환은 선진국에 돌입하였기에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문제이기도 하며 이를 위한 국가 차원의 체질 개선이 필요할 것입니다. 이제 복지와 노동이라는 왼손만이 아니라 시장이라는 오른손도 잘 쓸 수 있는 유능한 정치가 필요합니다. 산업구조를 유연화하고 대기업의 독점 시장을 통한 경제 왜곡을 방지하여 시장에서 창의적인 도전자들이 많이 나올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시장도 잘 사용하면 충분히 진보적일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칼 폴라니가 지적했듯이 시장이 곧 자본주의는 아니며 시장이 사회로부터 이탈되는 것이 문제입니다. 오히려 지금의 대한민국은 고도화된 시장의 기능을 사회적으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방안과 정책들을 모색해야 합니다. 

 한편 이러한 환경변화에 조응할 수 있도록 노동과 복지도 바뀌어야 합니다. 어떤 복지국가를 만들 것인가는 어떤 노동시장을 만들 것인가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고민해야 합니다. 이제 시대와 맞지 않는 전통 노선에 관한 토론과 논쟁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한국의 진보와 보수 모두 이러한 고민이 체계적이지 못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복지국가는 재정 확대와 같은 것으로만 인식되고 노동시장 정책은 노동권 확대라는 측면만 강조되었던 진보 진영의 편향도 있으며, 보수 역시 최근 ‘시럽급여’ 논란에서 보듯이 여전히 낡은 시혜적 관점에서 복지와 노동시장 정책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인구 고령화, 기후위기, 산업전환의 상황에 적응하고 노동시장 이중구조라는 한국 사회 최대의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임금체계 개편, 산업전환 과정에서 정의로운 전환 및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 정책 추진, 소득 기반의 혁신적 사회안전망 구축, 지속가능한 연금제도 개혁을 위한 사회적 대타협 등이 필요합니다. 이는 특정 정파와 정당의 힘만으로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상대를 제압하는 진영 정치가 아니라 설득하고 타협하는 정치로 가능할 것입니다. 

 정치전환을 이끌어 갈 새로운 정당은 미래 시점에서 현재 할 일을 (제시)하는 정책과 공약을 추진해야 합니다. 산업 에너지, 일자리, 거주환경 등 변화된 시민들의 의식에 맞게 성평등 가치를 존중하는 사회로의 이행, 은퇴 이후의 일과 삶이 안정적일 수 있게 지금부터 그에 맞는 정책들의 준비와 전환이 필요하며 국민연금과 건강보험 개혁, 교육개혁도 이에 해당할 것입니다. 나아가 지역 균형발전과 지방소멸에 대응하는 것과 돌봄과 안전을 국가정책의 최우선으로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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