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여름가을호(통권 195호)_인드라망사회연대 10주년 1_힘들고 지친 당신이 아무 대가 없이 쉴 수 있는 곳, 사회연대쉼터 인드라망 10주년 ― 송경동 > 인드라망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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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여름가을호(통권 195호)_인드라망사회연대 10주년 1_힘들고 지친 당신이 아무 대가 없이 쉴 수 있는 곳, 사회연…

인드라망관리자
2023-11-02 10:58 17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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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춘 씨가 후원 콘서트 해준답니다, 눈물겹습니다

힘들고 지친 당신이 아무 대가 없이 쉴 수 있는 곳, 사회연대쉼터 인드라망 10주년


송경동 시인


 정태춘 선배님께서 후원 콘서트를 열어 주시겠다고 하네요. 눈물겹습니다. 언제던가, 그해 멀리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고는 통장 잔고를 보았더니 두 개의 계좌에 7만 원이 남아 있더군요. 수십 년 상근비 한 푼 받아본 적 없이 활동했던 제 삶이라는 게 그러했습니다.

 조금의 돈을 융통해 '박근혜 퇴진 광화문 캠핑촌' 운동 때 쓰고 비정규 노동자의 집 '꿀잠'에 모아놓은 1인용 원터치 텐트와 코펠 등을 챙겨 무작정 동해 바닷가로 떠났습니다. 풍광 좋은 시골에 있으니 와서 쉬라는 곳도 있긴 했지만 거기도 모두 생활이란 게 있어서 하루 이틀 지나면 민폐일 터라 갈 수 없었고, 지치거나 마음이 다친 후에는 지인들 있는 곳에 가기가 오히려 힘든 일이기도 했습니다.

 이럴 때 경제적 여유라도 있으면 허름한 민박집이라도 얻어 한 두어 달 기숙할 테지만, 활동가들의 삶이란 게 그런 걸 허락해 주지 않았습니다.

 이 나라는 중간을 갈라놓은 철책선을 제외하면 어디로 떠나든 끝이 바다여서 다른 선택지도 없었습니다. 이 바다 저 바다에 며칠씩 텐트를 쳐두곤 밀려오는 파도에 지친 몸과 마음을 씻어보았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낯선 바닷가를 떠돌다 불교 쪽 일을 오래 하시던 이도흠 교수께서 마침 전화를 주셔서 전북 남원 실상사에 계신 도법 스님께 가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가보니 실상사는 잘 알려진 도량으로 근처 귀촌인 등 많은 이가 오가는 곳이고, 사회운동하다 내려온 분들도 많아 괜스레 마주치기가 불편했습니다.

 그래서 도법 스님께 혹 근처 산에 조용히 쉴 수 있는 암자나 움막 같은 곳이 없는지 여쭈니 실상사 말사로 지금 '사회연대쉼터 인드라망'이 지어진 전북 남원 산동면 만행산(1000여 미터) 중턱에 있는 귀정사를 소개해 주셨습니다.

 과거엔 전라북도 전체 사찰을 총괄하는(지금은 금산사가 맡고 있다고 합니다) 큰 도량인 '만행사'가 있던 터였습니다. 백제 시기에 지어진 유서 깊은 고찰이었는데 한국전쟁 당시 빨치산 토벌을 한다고 전소해 버린 터에 다시 조그맣게 지은 아픈 역사가 서린 절이었습니다.

 건너편에 지리산 자락이 있다 보니 부러 찾아오는 사람들도 없는 정말 고요하고 고즈넉한 산사였습니다. 산 중턱 450m 고지쯤에 푸른 대숲과 1급수의 맑은 계곡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절, 더더욱 여러 재가불자들이 모여 이룬 불가공동체 '인드라망 생명공동체' 소속 절로 '뭇 생명들의 안식처'를 지향하는 남다르게 청정한 절이었습니다.

 어쩌다 가끔 아랫마을에 사시는 꾸부정한 할머니 한 분이 쌀 두어 되를 담은 자루를 들고 치성을 드리러 올 뿐 오가는 신자들도 많지 않은 곳입니다. 과거 성균관대에서 진보적인 불교 청년 운동을 하다 '민중불교연합' 사건으로 국가보안법 피해자 생활을 거쳐 귀의했다가 재환속한 중묵 처사님이 조용히 지키고 있는 참 각별한 곳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몇 개월 쉬는 동안, 벗은 아랫마을에 사시던 공양간 할머니와 '귀정'이라 불리던 강아지 한 마리 그리고 이름을 까먹어 미안한 고양이 한 마리가 유일했습니다. 아니 무수한 꽃과 나무와 풀벌레들과 새들과 작은 짐승들이 나를 위로해주고 지켜주었습니다.

 처마 끝의 낙숫물과 지는 노을, 노랗게 익어가던 감, 계곡가에 떨어진 밤, 수북이 쌓이던 눈들이 내게 조용히 말을 건네주었습니다. 그곳에서 꼬박 가을과 겨울을 나며 지치고 못난 마음과 삶을 가다듬어 사람들의 마을로 다시 내려올 수 있는 힘을 얻었습니다.


묻지마 무료 연대쉼터


 하산을 준비하고 있을 때 실상사 종무실장으로 있던 수지행 선배가 고맙게도 사회운동 활동가들과 온갖 국가 폭력과 자본 폭력 등에 맞서다 지치고 아프고 쉼이 필요한 이들을 위한 연대 쉼터를 만들어 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해 주셨습니다.

 각종 사회 분쟁과 갈등의 현장에서 쉬지 않고 가파르게 살다가 정작 본인의 마음과 삶이 깨지거나 상처받거나 헐거워지면 알아서 도태되거나 스러져가야 했던 참 많은 이들을 보며 살아왔기에 너무나 고마운 제안이었습니다.

 이어 도법 스님과 중묵 처사님 등이 흔쾌히 '뭇 생명들의 안식처'를 지향했던 귀정사 터를 내고 쉼터를 만드는 일에 함께 나서 주셨습니다. 지난 여러 사회운동 과정에서 아픈 이들을 돌보는 주치의 역할을 자임했던 순천의 들풀한의원 윤성현 원장 등 근처 순천 지역에 있던 여러분들이 함께 마음을 내주셨습니다. 민들레한의원 이정우 원장,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 투쟁으로 2년여 감옥에서 살다 나온 박정훈, 전교조의 신선식·정영미 선생, 순천대 박성훈 교수 등이었습니다. 그리고 대구 지역에서 사회운동하다 마침 실상사 주변으로 귀촌해 있던 장병관, 신강 님 등이 초기부터 팔을 걷어붙여 주었습니다.

 모인 이들의 의견은 무조건 무료 연대쉼터로 하자였습니다. 우리 모두 경험해 봤듯이 마음이나 몸의 건강이 한두 주 또는 한두 달로 회복되느냐며, 이용 기한도 따로 두지 말자고 했습니다. 활동가들과 여러 폭력과 갈등의 당사자들은 쉼이 필요할 때쯤이면 안타깝지만 관계도 마음도 생활도 모두 깨져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기 전에 쉼의 시간과 조건을 보장해 오래도록 천천히 자신을 가꾸며 활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그런 조직 문화가 아직 이 땅엔 없다 보니 모든 게 온전히 개인의 몫이었습니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 사회의 평화와 평등, 안전하고 지속가능하며 차별 없는 사회를 위해 작은 일일망정 마음을 다해 온 당신들을 국가가 혹은 함께한 조직이나 동지들이 못 지켜주더라도 당신의 그간 노고에 감사하며 충분한 기간 어떤 대가나 요구도 없이 쉴 곳을 내주는 곳이 이 세상에 단 한 곳쯤은 있다는 희망을 전해주고 싶었습니다.

 빛나는 때 박수 쳐 주는 일도 중요하지만, 결국 지쳐 나가떨어진 우리의 아픈 뒷면도 함께 챙겨나가는 운동이 있다는 희망을 남겨주고 싶었습니다.

 정작 재원이라곤 단 한 푼도 없었습니다. 초기엔 고문을 맡고 계신 화가 신학철 선생님과 윤성현·이정우 원장 등이 주춧돌 기금을 내주시고 가능한 한 많은 분들이 십시일반의 마음을 모아 줘서 가능했습니다. 고 백기완 선생님, 문정현 신부님, 과거 남민전 전사이셨던 이남곡 선생님 등이 고문으로 함께해 주셨습니다.

 현재 민변 회장이신 조영선 변호사님, 희망버스 운동의 주축이었던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동지들 등 참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지고 그간 운영위원 등으로 수고해 주셨습니다. 1인 1실의 무료 연대쉼터로 쓸 공간들도 모두 우리 손으로 직접 건축을 마쳤습니다.

 긴 투쟁 과정에서 이런 공간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던 기륭, 쌍용자동차, 한진중공업, 콜트·콜텍 등의 해고노동자들이 함께 지었습니다. 사회연대쉼터를 함께 짓던 그 벗들이 다시 서울 영등포에 비정규노동자쉼터 '꿀잠'을 만드는 데 또 나서기도 했습니다.

 전미영, 이윤엽, 나규환, 노순택, 전진경 등 파견 미술팀들이 와서 예쁘게 공간을 꾸며주기도 했습니다. 그간 활동비 한 푼 없이 쉼터지기로 수고해 주신 김진, 장병관, 전한열 등 여러 일꾼들의 마음과 실천엔 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귀정사의 부처님은 어쩌면 이들이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의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중묵 처사님과 함께 쉼터 공동대표로 일해 주었던 순천의 윤성현 들풀한의원 원장, 초대 쉼터지기를 자임해 4년여 일하다 독일로 돌아가 운명하신 고 최정규 선배님도 잊을 수 없는 분입니다. 

 최 선배님은 1970년대 초등학교를 갓 나와 독일에 탄광 노동자로 갔다가 이후 자동차 공장 등에서 선진 노동운동을 접하고는 중간 중간 한국으로 돌아와 전노협 건설과 이주노동자 초기 인권운동을 함께하고 민주노동당 창립 당시 남원 연수원지기 등으로 수고해 주셨던 참 남다른 선배셨습니다. 쉼터를 만들겠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와 자신이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이라며 몇 년을 쉼터지기로 일해 주시며 아프고 힘든 이들의 벗이 되어주셨던 참 고귀한 선배셨습니다. 그 마음 기려 쉼터 입구에 '정규목'을 심어 추모하고 있습니다.


나도 쉴 수 있나요? 물론입니다


 현재 열 칸여의 1인 1실 쉼터를 연중 개방하고 있습니다. 그간 1년에 평균 100여 분의 소중한 이들이 장·단기로 쉼터를 이용해 왔습니다. 몇 달을 쉬는 데 정말 무료냐고 물어 오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학생운동을 거쳐 구로공단과 성남 지역 등에서 일하다 안면괴사증이라는 말 못 할 병환을 얻게 된 한 여성 동지는 근 8년여를 쉬어야 했지만 어떤 이용료나 대가도 없었습니다.

 뇌졸중으로 반신이 굳어 왔던 부산의 한 동지는 1년 반을 쉼터에서 생활하며 재활을 통해 기적처럼 건강이 회복되어 다시 활동에 복귀해 열심히 일하고 계시기도 합니다. 택시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원하는 단식농성 후 쉼터에서 쉬고 갔지만 지병 등으로 운명하시고 만 윤종광 님도 참 각별합니다. 긴 사회운동 시절에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 사회연대쉼터에서 잠깐 쉬던 때였다고 했습니다. 윤종광 님도 수목장으로 쉼터에 모셨습니다.

 채현국 선생님 따라 개운중학교 교장으로 일하다 간경화로 쉼터에서 쉬고 가셨지만 끝내 운명하고 말았던 박종현 선생님 등도 잊을 수 없는 분들입니다.

 그간 운영은 말없이 10년을 함께해 주신 100여 분의 CMS 후원자들 몫이었습니다. 지금도 상근하는 장병관 집행위원장에게 쉼터 운영용 1톤 트럭 기름값 30만 원 드리는 게 다인 가난한 살림이지만 한 번도 구차해지거나 위축되거나 주눅 들지 않고 당당했습니다. 우리 사회의 참된 민주주의와 인권 등을 위해 어디선가 힘써 일해 왔을 이들에게 어떤 마음의 부담도 가지 않도록 했습니다. 싸움의 현장을 함께 지키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런 갈등과 분쟁의 현장, 각박한 일의 자리에서 지치거나 상처받아 이젠 쉼이 필요한 동지들을 보이지 않게 지키는 것도 참 소중한 일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어떤 이는 만행산 등산을 다녔고, 어떤 이는 날마다 산 아래 요동마을까지 산책을 다녀왔습니다. 어떤 이는 밭으로 나가 작물 재배에 마음을 쏟고, 어떤 이는 저 아래 요천으로 돌미나리와 다슬기를 잡으러 다녔고, 어떤 이는 약초를 찾아 나섰고, 어떤 이는 늘 계곡가로 나가 조용히 앉아 있었습니다. 저물녘 구들방 아궁이에 불을 넣는 일이 가장 경건한 시간이었다는 분들이 참 많았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근처의 울창한 대나무를 쪄 세상에 딱 하나뿐인 대나무 의자를 만들어 놓고 온 일이 참 행복한 일이었습니다. 여름밤에 혼자 나와 계곡가에서 도깨비불처럼 켜진 반딧불이들의 유영을 보며 앉아 있던 일도 참 각별했고요. 그간 여러 지역의 해고자들, 단식자들, 여러 분야의 사회단체 활동가들, 세월호 유가족분들 등 국가 폭력 피해자 분들이 쉼터를 찾아 주셨습니다.

 불교 예식도 따로 요구하지 않는 자율 쉼터였습니다. 공양간 밥은 유기농 채소들로 늘 찰졌습니다. 등산객들도 거의 없는 워낙 청정한 지역인지라 1급수인 물과 공기만 먹고 있어도 절로 몸과 마음의 건강이 회복되는 천혜의 쉼터였습니다. 꼭 많이 아프거나 상처받은 이들만 오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더 지치거나 힘들어지기 전에 자신을 돌아보고 정리해보는 일상적인 쉼의 공간이었습니다.


소수의 영웅이 아닌 다수의 민주주의를 위하여


 그간 사회연대쉼터 인드라망은 창립 때 한 번, 5년 차에 한 번 언론을 통해 알린 일 말고는 굳이 자신을 알리려고 하지 않고 조용히 후방의 자리를 지켰습니다. 혹여라도 쉬는 이들이 불편하거나 대상화되지 않게 하려는 배려였습니다. 사실 이런 실천과 연대를 실현하는 곳이 많지는 않을 듯합니다.

 이젠 10년이 지났기에 한 차례 귀정사 사회연대쉼터 인드라망이 지나 온 길과 마음을 알리고, 이후 또 10년을 지낼 힘을 모으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습니다. 마침 고맙게도 오는 9월 2일(토), 쉼터 10주년의 노고를 위로하고 함께 힘을 보태는 마음으로 정태춘 선배님께서 후원 콘서트를 산사에서 열어주시기로 했습니다. 참 고맙고도 특별한 산사 음악제가 될 듯합니다.

 그래서, 부탁이 있습니다^^ 이런 마음들 한 번쯤 응원해 주시고, 작은 힘들이나마 십시일반 모아 주시면 참 고맙겠습니다. 쉼터를 도와주시는 게 아니라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어디선가 자신을 헌신하고 있는 이들을 함께 응원하고 지켜나가는 일입니다.

 전투병만이 아니라 부상병들도 함께 지켜나가는 사회민주주의의 또 다른 전선입니다. 영웅들만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 토대가 되어 주었던 수많은 무명의 활동가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주는 일이며 언제든지 외롭거나 힘들 때면 내 집처럼 찾아갈 곳이 한 군데는 있다는 희망을 그들에게 심어주는 일입니다.

 한 번쯤은 나도 위로받고 싶다는 이들을 보듬는 자리, 이들을 위한 기다림의 자리를 만들어 주는 소중한 일입니다. 이 국가와 정부가, 자본이, 배부른 정치인들이, 상층의 명망가들이 만들어 주지 않는 나눔과 연대의 공간을 하나 올곧게 열어두는 일입니다. 10년을 묵묵히 달려 왔으니 이젠 함께 나서주시는 일입니다.

 주변에 힘들어하는 벗들이 있다면 언제든지 사회연대쉼터 인드라망에 가서 좀 쉬고 오라고 권유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사회를 위해 힘써 일하다 잠깐의 쉼이 필요한 그분들이 이 공간의 주인이니까요. 한 사람이 아프면 주변의 모두가 아프게 됩니다. 우리 모두 서로를 비추며 연결되어 있는 구슬 같은 사람들, 그런 인드라망의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힘들어 보이거나 아파 보일 때, 그런 신호가 보일 때, 적절한 쉼을 통해 자신을 회복하도록 돕는 것은 사실은 나를, 진정으로 벗을, 우리를, 내 단체와 조직을 지키는 일이기도 할 것입니다. 어떤 투쟁만큼이나 소중한 일일 것입니다. 사회연대쉼터 인드라망 10년을 지켜오며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그것일 겁니다. 누군가 더 아프거나 힘들지 않게 함께 지켜나가는 두터운 우리가 되자는 이야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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