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여름가을호(통권 195호)_시를 적다 시를 만나다_벚꽃 단장 ― 두메
인드라망관리자
2023-11-02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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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벚꽃 단장
이면우
그해는 사월이 와도 일이 없었거니
여편네가 건네 준 점심보자기를 끼고
이 현장 저 공사판을 날마다 기웃대다
종내는 시립도서관 벤치
식은 밥 우황 든 소처럼 씨ㅂ고 있었거니
발 아래 저 자본의 도시는 황사 뿌옇고
내 눈은 저 아득한 한 점
남의 지붕 아래 한 칸 방
그 안에 나만 믿는 입들이 있으니
그 안에 나만 조ㅊ는 따스한 눈빛이 있으니
……
그때 문득 한 입 가득 생비린내
눈 부벼보니 밥 우에 벚꽃 몇 이파리
나는 저 깊은 데서부터 천천히 목이 메었어라
묵은 딱쟁이에 생피 돋듯
그렇게 뜨겁게 목이 메었어라
어느 울타리 속의 봄이 가는지
늦게사 눈을 뜨니
천지 가득 활짝 벙근 벚꽃
하늘, 땅 새에 풀풀 날리는
오, 그 죄 없는 밥풀때기.
출전 : 『그 저녁은 두 번 오지 않는다』 2002.
視詩한 한마디
올 봄 벚꽃구경은 하셨겠지요? 시 제목에서 벚꽃단장은 斷腸이 아닐까 합니다.
벚꽃나무 아래 식은 점심밥에 내려앉은 벚꽃 이파리 하나가 애써 눌러온 시인의 애간장을 끊어 놓았으니 말입니다.
일거리를 찾지 못한 노동자 가장의 비애가 비릿하게 풍겨오는 이 시는 벚꽃이 필 때면 늘 떠오를 것 같습니다.
자기소개
두메 : 글씨에 물을 주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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