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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 7호] 귀농자 탐방 - 여주 김춘희, 윤덕영 씨댁

인드라망사무처
2022-11-27 14:53 70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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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땅으로부터 시작된다 / 김순정(인드라망생명공동체 소식지기)



김춘희씨 댁에 찾아가니 집 한 귀퉁이 처마를 비껴난 자리에 항아리들이 서로 어깨를 기대고 졸졸이 내리는 비를 맞으며 서 있다. 이집 안주인이 하는 말 “효소를 담그려고 항아리들은 다 모아 놨는데 아카시아 꽃 딸 때가 아이들 시험기간이랑 겹쳐서 어찌나 바쁘던지 담지도 못했어요. 물론 내가 살림에 영 취미가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이 주변에 죄 널려 있는게 효소 담을 껀데...”


읍에서 학원강사를 하는 김춘희씨의 생활이 묻어나는 말이었다. 언젠가 선배가 귀농자에게 ‘귀농은 실존과 생존 사이의 줄타기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귀농이라는 새로운 삶의 선택에도 먹고사는 문제며 사람사이 갈등이며 사는데 따라다니는 어려움들은 여전히 버겁게 따라붙다. 어디 도시에서 살던 사람들이 시골에 새롭게 뿌리를 내리고 살기가 그리 녹록한 일이던가. 시골살이라고 사람들 사이의 갈등이 없을 것이며 마냥 행복하기만 할 것인가. 여주에 사는 김춘희, 윤덕영 씨는 이 아슬아슬한 삶의 균형잡기에 7년째 접어들고 있는 귀농인들이다. 


학원 강사를 하다가 평생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던 김춘희씨와 선배에게 잠시 넘겨받은 경당을 맡아 운영하면서 귀농모임을 하고 있던 윤덕영씨는 99년 전국귀농운동본부가 무주에서 진행한 여름귀농학교에서 만났다. 만난 지 일주일 만에 결혼이야기를 하고 그해 겨울에 후딱 결혼식을 올렸는데 김춘희씨가 남편이랑 결혼할 맘을 먹은 이유는 이렇다. 공부도 할 만큼 했고, 대머리도 아니고, 키도 안 작고, 가는 길도 같으니 한마디로 ‘결격사유가 하나도 없어서’ 결혼을 했단다. 결격사유 하나 없는 이 부부는 7살 난 동기와 8달째 엄마뱃속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아이와 함께 다가오는 봄을 맞이하고 있었다.


부부는 결혼하고 처음에는 남편의 고향인 해남으로 내려가 시댁이 좁다는 남편의 주장에 힘입어 동네 빈집을 얻어 살았다. 농사꾼에게 땅이 없고 가진 돈도 풍족하지 않으니 이래저래 어려움이 없을 수 없을 터. 결국 첫아이 동기가 태어난 지 8개월 만에 김춘희씨는 다시 학원강사를 나가야 했단다. 엄마가 학원강사를 나가는 사이 아이를 데리고 농사일을 나간 아빠는 아이를 차에 눕혀놓고 농사일을 해야 하는 생활이었다. 이렇게 2년을 보낸 뒤 한살림과 인연이 되어 다시 여주에 터를 잡고 지금에 이른 것이다. 해남에서 낳은 동기가 이젠  아빠와 텔레비전을 놓고 다투며 투닥거리는 나이가 되었으니 결코 짧지만은 않은 세월이 흐른 셈이다.


이들 부부의 살림집은 고불고불한 시골길을 한참 지나 야트막한 산 밑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 “궁금한 거 있으면 저이한테 물어봐요. 난 전원생활 하는 거고 저이가 진짜 농사꾼이야!” 달큰한 호박고구마를 쪄내주며 김춘희씨가 말한다. 아닌게 아니라 김춘희씨는 여주에서도 여전히 학원강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데 아이가 생긴 덕분에 요즈음은 집에서 쉬고 있다. 농사만으로는 생활이 빠듯해 농가부업을 고민할 법 한데


올해부터 윤덕영 김춘희씨는 생활이 조금 더 바빠졌다. 윤덕영씨가 여주농민회 일을 하기 시작했기 때문인데, 덩달아 김춘희씨도 여성농업인센터에서 오라는 일이 많아져 빠질 수가 없단다. 김춘희씨 왈 “시골에 워낙 젊은 사람들이 없으니 보이면 무조건 오라는 거지. 오라니 안갈 수가 있나”

서울살이에 사람관계 번잡스러움이 싫기도 했거니와 농사일에 학원일에 집안일에 치이다 보면 마을이고 어디고 도통 얼굴내밀 체력이 안 돼 그동안 마을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이 적었다. 그러나 농사는 혼자서는 지을 수가 없는 것이라 하다못해 품앗이라도 같이 하려면 내가 품앗이를 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이렇게 자분 자분히 관계를 넓혀가려는 이들에게 여주라는 지역은 호락호락하게 자기 품을 내어주지는 않는 듯하다. 


경기도 여주는 수도권에 부는 ‘미친 듯한’ 개발바람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한 지역이다. 골프장이다 물류센터다 하여 땅 가진 부자들에게는 날로 오르는 땅값이 쏠쏠한 재미를 줄지언정 땅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이들에게는 맘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닌 지역이다. 김춘희씨 댁 뒷산은 이미 40만평 골프장이 생긴다 하여 팔렸다고 하고 길 너머엔 8만평짜리 무슨 명품아울렛이 생긴다 하니 도통 농사지을 맘이 안 생긴다고 한다. 이 와중에 작년 얻어 농사지었던 땅이 몽땅 팔렸다고 하니 올해는 어느 땅을 얻어 한해 농사를 지어야 할지 고민중이란다.


이렇게 자고 일어나면 골프장이 생기는 지역이라 농사보다는 수도권에서 흘러들어오는 돈에 기대 살겠다는 맘이 안 생길 수 없다. 당연히 돈 안되는 농사, 농사꾼에 대한 땅인심은 박하다. 게다 10년씩 장기 임대를 얻는 건 꿈에도 못 꿀 일이다. 유기농업을 하는 농사꾼에게는 자기 땅이 얼마나 기름지고 건강한지를 나타낼 수 있는 자랑거리가 바로 농산물이라는 윤덕영씨, 이 농사꾼의 마음처럼 땅은 생명이 자랄 때 가장 값지다는 사실을 모든 사람이 고개 끄덕이면 받아들일 날이 올까.


이들의 주 작목은 고구마로 작년 3,000천 평 땅을 얻어 고추농사와 고구마농사를 지었다. 고추는 직거래단체와 계약을 맺어 내기로 하고 고구마는 직접 알음알음 팔기로 하고 농사를 지었다. 그러나 그해 10월 단체로부터 생산량이 많아 고춧가루 수매를 할 수 없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고. 급한대로 여기저기 팔아보기는 했으나 고춧가루는 김장철 빼고는 그리 큰 수요가 없는 품목이라 아직 100여근이 남은 채였다.

유기농산물이 기존 농산물과 다른 유통체계를 가져야 하는 것은 그것이 특별해가 아니라 농산물을 통한 ‘관계맺기의 새로움’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척박한 농업현실에서 직거래라 해도 이 같은 일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것도 사실이다. 어느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일이기에 이런 일을 만날 때면 귀농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에 대한 다시한번 고민하게 된다. 


작년에 캐낸 고구마를 낼 때 김춘희씨는 일부러 흙을 털어 내거나 크기를 맞추어 담지 않는다. 사람들에게 크기 적당한 소위 ‘상품성 있는 고구마’만 담아 보내면 크고 작고 울퉁불퉁한 나머지 고구마는 어디로 보내냐고 가릴 것 없이 먹으라며 상가가득 작은놈 큰놈 섞어 내보낸단다. 그런 김춘희씨를 보고 주변 사람들은 장사를 배짱으로 한다고 한다며 깔깔거리고 웃었다.

이제 귀농 7년차, 땅도 좀 사고 생활도 안정되어 살만하다는 말을 하지 못해서 민망하다면서 웃는 부부. 농가부채가 없는 것만으로도 성공했다는 말을 듣는다며 허허거리는 이들에게 가난하되 궁기를 풍기지 않는 자족한 가난함을 본다. 배짱이라도 좋고, 뚝심이라도 좋을 것이니 그 배포가 오랫동안 유지되어 농사꾼 되기 정말 잘했다는 말을 나누며 머리 새도록 즐거웠으면 하는 바램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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