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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 7호] 산골에 사는 즐거움

인드라망사무처
2022-11-27 14:56 662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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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로 차린 밥상 / 산골아낙 (양난영)



뒤안에서 적당한 소쿠리 찾아 쪼매난 칼 하나 넣어 옆구리에 꿰차고 언덕밭을 오른다. 여기부터 시작할까나, 퍼질러 앉아 제일 처음 눈에 띈 냉이를 캔다. 아우, 너무 많다. 또 너무 잘아. 큰놈만 캐야지, 벌써 꽃대가 올라오는데.


두메부추가 제법 올라왔다. 야들은 번식을 참 잘해, 한 뿌리 심으면 금새 둘 셋. 금방 한 무더기를 이루지. 그러면 뜯어말려줘야 해. 정구지도 보랏빛 싹들이 뾰족뾰족 마치 언뜻 보면 독새풀처럼 분간이 안 되게 올라온다. 며칠 전에 밭을 메줘서 그나마 숨 좀 쉴 꺼야.


두메부추를 한 아름 도려내서 소쿠리에 담고 냉이 캔 것도 따로 담고, 쪽파 밭에 제법 키가 큰 놈들 군데군데 눈에 띄길래 쑥~ 흙 탈탈 털어 뽑아서 소쿠리에 담고. 아우, 금세 한 소쿠리 가득 찼네.


이거 갖고는 안 되겠는걸. 비탈길에 걍 냅두고 다른 소쿠리 있나 찾아본다. 소마구에  하얀 들통이 있길래 마침 잘되었다 싶어 냉큼 그걸 들고 나선다. 덩달아 호미도 하나 챙기고. 산으로 들로 나설 때 비얌 무서버 뭐라도 연장 하나 가지고 가면 덜 무섭다.


산 쪽으로 붙은 뒷골밭으로 차츰차츰 올라가면서 눈에 띄는 대로 냉이를 캔다. 삼동추는 아직 도려 먹을 정도는 안 컸군. 좀 비가 더 와야겠는 걸? 굳이 뜯어먹자면 못 할 것도 없겠지만 좀 더 커라 마!


제법 마늘밭이 푸르다. 바람이 불면 잎이 따라 흔들린다. 이뿌다. 마늘잎도 뜯어다 콩가루 뭍혀 밥 위에 찌면 별미인데 좀 더 자라걸랑 해묵어봐야지.


내처 산 밑까지 올라간다. 쑥부쟁이들이 발 디딜 틈도 없이 뻗었다. 몇 년 전에 산도랑가 쪽으로  밭둑 따라 주욱 올라가며 두 포기씩만 심었는데 이거야 원 수십 포기가 좌악 밭둑을 뒤덮었다. 잎들이 엄청 올라왔다. 그 자리에 주저앉아 순을 딴다. 와우 이거 데쳐서 된장에 무쳐먹으면 얼매나 맛있는데. 오늘 저녁엔 이걸루 반찬해야지.


밭둑을 따라 올라가면서 좋은 놈들만 뜯는다. 누가 같이 와서 뜯었으면 참 좋았으련만, 혼자 묵기엔 너무 아깝네. 낙옆 더미에 묻혔어도 쑥쑥 자라 올라오는 잎들을 보면서 사람도 이 쑥부쟁이같이 씩씩하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산마늘이 많이 자랐다. 잎이 두 잎 째 나서 어른 손가락길이만치 돋았더라. 너무 이쁘고 아까워 뜯을까 말까~ 한참을 망설이다가 길가 쪽에 난 놈들만 잎을 뜯고 안쪽으로 옮겨 심었다. 밟힐까봐... 이놈들도 씨가 번져서 산 밑 밭 여기저기에 돋았더라.


몇 년 전에 텃밭 정구지가 너무 많이 번식해 뜯어말려 산 밑 밭으로 귀양 보낸 정구지 식구가 있었는데 이야, 텃밭에 있는 놈들보다 먼저 돋았네. 와, 베어 먹어도 되겠다. 역시 야생으로 돌아가니까 더 힘이 좋은 거 아냐?


그 옆에 달래네 식구들이 한고랑 차지하고 자라고 있다. 언뜻 보면 풀이라 생각될 정도로 가늘고 약해 보인다. 달래도 한 움큼 뜯어 넣었다. 달래는 절대 혼자 안자란다. 또 혼자 안 뽑힌다. 꼬옥 지 새끼 알뿌리도 달고 나온다. 그걸 보면 딴엔 맘이 숙여진다. 해서 새끼들은 흙을 다독여 묻어주고 큰놈들만 뽑아 담는다. 참나물이 잎이 뭉쳐서 돋아난다. 야들도 야생으로 돌아갔나 잎이 초록이 아니라 약간 어둡다. 대신 향은 대단하다.


아직 뜯어 먹을 때는 덜 되었다. 아쉽다.



민들레가 여기저기 톱니바퀴 같은 잎을 내밀고 자라고 있다. 몇 뿌리 캐서 담는다. 기린초가 참 이쁘게 여기저기 돋아나있다. 얘들도 몇 송이 따 담는다. 개미취는 아직 잎이 작다. 땅바닥에 딱 붙어 일어설 줄을 모른다. 미역취도 아직 잎이 크지가 못 하다. 아무래도 야들은 좀 늦드라. 섬초롱은 잎이 작아도 윤기가 흐른다. 그새 얼마나 많이 번졌는지. 올해 섬초롱 꽃 피면 꽃초밥 많이 해묵을 수 있겠네. 참취는 이제사 겨우 뽀족! 흙속에서 촉을 내밀고 있다.


흙을 파보다가 다시 덮어준다. 언넝 올라와!!!


며칠 전 산비탈에 심은 나무들을 둘러보러 갔다. 오늘 그런대로 비가 뿌렸으니.. 뿌리를 잘 내릴 꺼야.


이렇게 비가 옷 젖을 만치 뿌리는 날, 들로 산으로 한참을 걷다보면 있던 시름도 잊는다.


그래서 일부러 비 뿌리는 날 산에 간다. 내처 산으로 오르려다. 욕심껏 캐고 뜯은 나물 다듬을 걱정에 부랴부랴 집으로 내려온다.


나무꾼보고 달래 좀 다듬어주소 맡겼다. 성질머리 급한 선녀는 달래같이 가늘어 다듬기 구찮은 것은 못 들고 앉아있다. 대신 잎이 큰 쑥부쟁이랑 냉이랑 민들레랑 쪽파랑 두메부추랑 산마늘 잎이랑 기타 등등은 선녀랑 할매랑 다 다듬었다.


나무꾼과 선녀와 할매가 오붓하게 마루에 둘러앉아 나물을 다듬는다. 이거 선녀 혼자 했으면 세월아 네월아 하루가 다 갔을껴. 오늘따라 학교 간 얼라들이 늦게 오네 같이 하면 금방인데.


달래는  액젖 넣고 고춧가루 넣고 버무려 한 접시. 냉이랑 쑥부쟁이랑 같이 살짝 데쳐 양념된장에 무쳐 한 접시. 두메부추는 그냥, 민들레는 살짝 데쳐 양념장에 찍어먹게 한 접시. 산마늘 잎이랑 기린초는 쌈으로 한 접시. 정구지랑 쪽파는 밀가루 걸게 풀어 들기름으로 적을 꾸면 막걸리 안주로 제격이지 암!


작년 갈에 갈무리 해둔 묵나물 겨우내 먹다가 남은 놈들 여름오기 전에 언넝 마저 처분해야지. 곳간에 있던 놈들 꺼내어 물에 불리고 삶아 데쳐 무시레기랑 취나물이랑 머굿대랑 고구마줄기랑 토란대랑 데친 것을 간장 된장으로 양념도 하고 들기름으로 들들 볶기도 하고 들깻가루 풀고 끓이기도 해서리 조금씩 조금씩 한 접시씩 맹글어 상에 놓는다.


이렇게 하루 한나절 한참을 부산을 떤 다음 그야말로 <풀로 차린 밥상>을 차린다. 음, 나무꾼과 얼라들이 기어코 한 말씸 하시겠네.



“우리가 토깽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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