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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 9호] 산골에 사는 즐거움

인드라망사무처
2022-11-27 15:12 709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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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풀일까 채소일까?

산골아낙 (인드라망회원)



풀하고 한판승을 앞두고 있는 요즘, 풀하고 쌈을 시작 할 때는 애시당초 이길 생각은 말아야 한다. 적당히 타협을 보고, 적당히 눈 감아 주고, 적당히 나몰라라 해버려야 신간 편하고 수명이 적당히 길어진다카이. 풀하고 본격적으로 쌈하겠다고 뎀비면 고대로 숨 꼴딱 넘어간다.


어제 산 밑 꼭대기 밭에 가서 첨에 가기는 그냥 쑥이 얼만치나 밭으로 쳐들어왔나, 쇠뜨기가 얼만치 번졌나 요것만 확인 할라꼬 그랬는디. 먼 맘을 먹었던지 그냥 퍼질러 앉아서 하루 종일 쑥하고 쇠뜨기하고 씨름을 해 버린거이다. 그래서 오늘 새벽까지도 두 손목 열 손가락들이 사정없이 욱신거려서 숟가락도 못 들 지경이었다. 와, 내가 먼 정신이냐? 평소 안 하던 짓거리를 해서 벌받은거지비.


도랑가 쑥 침범해 들어온 거 다 뽑아버리고 쇠뜨기 들어와 자리 잡은 놈들 다 파버리고. 온 밭에 번져 있는 냉이들과 이런저런 잡풀들 다 걷어버리고 망초, 명아주, 바부쟁이들 쏙쏙 다 뽑아버렸다. 도라지밭, 더덕밭, 취밭, 정구지밭, 야생초밭들 몽땅 한바퀴 휘휘 돌았다. 진짜루 한바퀴 돌았다. 그랬더니 쪼매 훤하드라 밭이. 취하고 더덕들이 씨 떨어진 것이 다 싹이 터서 발 디딜 틈이 없는데 저놈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올 가을이나 내년 봄에 모종을 해야하는건지. 당췌 호미질이 안되어 호밋발에 다 뽑혀나가니까 그냥 열 손가락으로 막 후벼댔는데. 밭둑가에는 섬쑥부쟁이가 줄줄이 심어져있는데, 독새풀들이 기승을 부리며 자리를 차지하고 안 비켜줘서 싹 뽑아버렸다.


망초하고 쑥부쟁이하고 언뜻 보면 비슷한기라 첨보는 사람은 자세히 봐야 알 수가 있다. 그걸 일일이 구분해가며 뽑아주고 독새풀들 뿌리채 뽑아 거꾸로 쳐박고 소먹이덤불 일일이 뿌리를 찾아내어 뽑아주고 명아주도 눈에 띄는 대로 싹 뽑아버렸다. 일하다말고 코끝에 찐하게 묻어 들어오는 거이 무신 향이냐. 찔레꽃향이구나. 와 사람지긴다. 아카시아향도 간간이 맡아지고. 날도 덥도 않고 꽃향기는 절로 날라 오고 바람 살랑살랑 불어오니 아무데도 가기 싫다. 그래서 하루 종일 밥 세끼 먹는거 빼곤 산밑 밭에서 살아버렸다.  아이들은 그 바람에 하루 종일 지들끼리 놀아야 했는데 도무지 엄마가 어디를 갔는지 찾을 수가 없었단다. 산밑밭은 나무들로 가려져서 이제는 거기에 사람이 몇 있어도 그만 보이질 않게 되어버렸다. 그래서 혼자 놀기엔 그저 그만이다.


점심에는 도랑가와 밭둑에 제법 자란 머구 잎 뜯어다 데쳐서 쌈을 싸먹었다. 쌉싸름한 것이 입맛 돋군다. 머구줄기는 데쳐서 껍질벗겨 볶아먹거나 국에 넣고. 이웃 고추밭엔 벌써 철사 꽂고 말목박고 줄 다 메었던데 우린 언제 하노. 할매는 된장 간장 뜨고 돌미나리 다듬느라 하루해를 다 보내신다. 언넝 덥지 않을 때 했으면 좋겠구마는. 깨싹도 부지런히 올라오는데 언제 할라꼬. 딴 싹은 올라와도 겁 안 나는데 참깨 싹은 올라오면 진짜 겁난다. 땡볕에 솎아줘야 하고 흙 북돋아줘야 하니께. 병충해에 약해서 약도 쪼매 쳐야 하고 하여간 참깨농사는 애물단지다. 같은 깨라도 와 들깨하고 그리 차이가 나는겨. 들깨는 암데서나 잘 자라고 뿌리가 뽑혀도 도로 심어놓으면 잘 크는데 이노무 참깨는 한번 뽑혔다카면 걍 히쭉 죽어버린다. 그리고 아무데서나 잘 자라지도 않는다. 땅 탓을 얼마나 하는지 모른다.


초봄엔 냉이 꽃다지 망초 이런저런 봄풀들을 뽑아줘야 하고 늦봄엔 명아주 쇠비름 소먹이덤불 쇠뜨기 쑥 독새풀 띠풀 바부쟁이하고 쌈을 해야 한다. 이놈들하고 쌈이 끝나면 그담엔 뭐가 기다리고 있는고 하니 그 징글징글한 풀, 거 이름이 뭐드라???  바랭이! 융단폭격이 기다리고 있다. 시방 감자밭에 포진하여 감자보다도 수십배 수백배 수천배 수만배 수억? 더 많은 수량을 자랑하며 자라고 있는 것이 바랭이다. 깨밭에도 이놈들이 먼저 싹을 틔워 <내다!> 하고 고개를 내밀고 있드라. 바랭이는 첨에 싹이 났을 때 사람들이 우습게 본다. 까짓 좀 자라면 뽑지, 좀 자라면, 손에 잡히면 뽑지, 허나 이미 손에 잡힐 만치 자라면 그때부턴 작물에 피해를 주게 되고 한여름 땡볕이라 일하기 힘들게 되어 그만 포기를 하게 되니 그때부턴!!! 밭이 온통 바랭이 밭이 되어버린다. 이것을 재작년에 산 밑 밭에서 처참하게 직접 겪었더랬다. 그래서 작년부턴 이 바랭이를 초장에 없애려고 땅을 호미로 박박 긁어댔다. 싹부터 없앨라꼬!  어제보이 바랭이 싹들이 파랗게 땅을 뒤덮고 올라오고 있는 중이드라……. 눈여겨 안 보면 안 보이는거이 이 싹인데. 땅 마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싹~ 다 긁어버릴거다. 지금은 땅이 축축해서 긁어버려도 다시 흙에 묻혀 살아남는다. 풀과 한판승에서 어느 정도 한시름 놓으려면 그 시기를 적절히 살펴야 한단다. 할매는 그 시기를 잘 아셔서 일을 해내시는데 선녀는 아직도 얼띠기라 정신을 못 차린다. 그래서 오늘도 할매 뒤만 쭐레쭐레 따라다니며 눈팅! 하기 바뿌다!


한참을 이런저런 풀들하고 눈쌈 호미쌈을 한 끝에 먹을 만한 풀들을 한줌 두줌 옷춤에 주섬주섬 싸갖고 내려왔다. 농사일 시작한지 꽤 되는데도 아직 이름모를 풀들이 많다. 어르신들께 물어봐도 그까짓 이름 알아서 뭣하느냐고 그냥 웃으시기만 하고 또 관심 없으신지 쳐다도 안 보시드라.  풀이라면 징글징글하시단다.  왜 안 그카시겠노! 내도 시방 징그러분데. 그래도 이놈 풀도 이쁜 구석 많은디 왜들 미워라만 하실꼬. 맞다. 그카이 생각나는데 벼도 보리도 무도 배추도 상추도 시금치도 첨엔 다 풀 아니었을꺼나. 야들도 풀 맞잖는겨. 인간한테 이쁨 받는 풀은 채소라 이름하고 미움 받는 풀들은 잡초라 이름 하니 거 참 불공평하기도 하고 머 그렇다. 


오늘 호미질해서 건진 먹을 만한 풀들이 보자. 뭐가 있노.  산에서 크는 왕고들빼기 하얀민들레 명아주 망초 쇠비름 들나생이 머 이정도. 아직은 잎들이 연해서 살짝 데쳐서 먹으면 그런대로 아쉬운 대로 반찬 한 가지 구실은 해준다카이. 된장고추장만 있으면 딱이여.  요새 산이고 들판이고 먹을 거 천지다. 대충 아무데나 퍼질러 앉아 뜯어도 하루 입에 풀칠 할 정도는 되드라말씨.  여름 땡볕이 되면 잎들이 두꺼워지고 억세져서 요즘이 아주 좋다. 좀 더 있으면 쌈으로 할 수 있는 풀들은 거의 없다 봐야한다.


밭일 하다가 저녁상에 올릴 풀들 이것저것 챙겨보자고 신경 써서 둘러보고 있는데 자꾸 자꾸 찔레꽃향기가 온몸으로 스며들어 킁킁……. 찔레꽃덤불쪽으로 쪼차간다.  꽃무더기에 얼굴을 들이대고 향을 맡는다. 하아……. 좋다.  아카시향기보다도 더 기맥히다.  요즘 도랑 가에 밭둑에 노오란 애기똥풀이 흐드러졌다. 저아래 도랑 가에서 꼬맹이와 작은놈이 애기똥풀 줄기를 꺾어들고 손톱에 쓱쓱 칠하고 논다. 도랑가 이짝 섶으로 찔레꽃이 환하다. 주위가 온통 찔레꽃 외엔 안 보인다. 호미를 던져놓고 퍼질러 앉아 흙투성이 땀투성이 된 얼굴 한번 쓱 훔치며 향기를 찾는다. 눈을 감는다.  사르르 사르르……. 바람결에 살그머니 묻어 들어온다. 어느새 땀이 듣는다. 다시 일할 맛이 난다.


하루 종일 호미들고 손목 우리하게 일한 다음 찔레꽃 피어있는 애기똥풀 피어있는 도랑가 길을 걸어 집으로 내려온다. 몸은 피곤하나 입가엔 웃음이 피어난다. 개구리 맹꽁이 소리 요란하다. 이런저런 풀 갖고 만든 푸성귀반찬 사이에 고등어조림 하나 올려놓았다.


<하늘로 구멍 뻥 하니 난 산골짝 비안곡 나무꾼과 선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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